元 “권영세 ‘회의록 공개 알아서 하라’고 말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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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國調 원세훈-김용판 청문회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 동행명령장을 발부받고 출석한 두 사람은 증인 선서를 거부하고 검찰의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공소장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 동행명령장을 발부받고 출석한 두 사람은 증인 선서를 거부하고 검찰의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공소장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맥 빠진 청문회였다. 16일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의혹 등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는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해 당초 목적인 ‘진상 규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회의 동행명령서를 받고서야 출석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증인선서 자체를 거부하면서 초장부터 김을 뺐다. 엉뚱하게도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의 주장만 TV 생중계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 검찰의 공소장 내용 전면 부인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은 검찰의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공소장 내용을 부인했다. 두 증인은 대선 개입과 관련한 민감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겠다”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답변을 피하기도 했다.

원 전 원장은 기소 내용 중 국정원법 위반(국내정치 개입)에 대해 “재판 중이라 답변이 적절치 않다”면서도 “선거 개입은 동의하지 않는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대북심리전단을 대북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한 것에 대해 “2009년 북한이 대남공작부서를 개편해 사이버 공격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고 답했다. 대북심리정보국이 인터넷에 댓글을 달거나 찬반 클릭을 한 데 대해서는 “사후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2007년 남북정상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새누리당의 요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원 전 원장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은 대선 직전 권영세 당시 박근혜 대선 캠프 종합상황실장과 회의록 공개 문제와 관련해 전화로 상의를 했다고 진술해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원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했을 때 새누리당 의원들이 회의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해 답답해서 정회 중에 친분관계가 있던 권 주중대사에게 전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권 대사도 ‘네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답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이에 대해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장이 정보위 정회 중에 권 대사와 통화를 하고 (회의록 공개 문제를) 상의했다는 답변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가 있느냐”며 “권 대사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전 청장은 시종 “떳떳하고 당당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때때로 비웃는 듯한 표정도 지었다. 지난해 대선 직전인 12월 16일 경찰의 국정원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허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여직원이 제출한 컴퓨터) 분석 결과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한 게시글이나 댓글이 없었기 때문에) ‘없었다’고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2월 16일 밤늦게 급히 수사 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서는 “언론의 취재경쟁이 치열해 발표하지 않으면 몇몇 언론이 특종 보도를 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 전 청장은 수사 결과 발표 당일 박원동 당시 국정원 국익정보국장과 한 차례 통화한 사실은 인정했다. 민주당은 김 전 청장이 수사 결과 발표 전날인 12월 15일 점심을 누구와 했는지 집요하게 추궁했다. 수사 결과 조작을 누군가와 모의하지 않았겠냐는 것. 그러나 김 전 청장은 “점심을 누구와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선거와 관련된 인물은 결코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 與는 “선방”, 野도 “얻은 것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에 대해 “북한의 심리전에 대한 정상적 대응”이라며 두 증인을 옹호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장우 의원은 “김용판 원세훈은 야당의 엉터리 짜 맞추기 여론 조작의 희생양”이라며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사건은) 야당이 대선에 승복하지 못해 하는 것이다. 억지를 써서 거리로 나가 거리의 친북세력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공세를 ‘제2의 병풍(兵風)사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번 사건을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서 ‘실패한 정치공작’이란 프레임에 가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당은 벼르고 별러 성사시킨 청문회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원 전 원장과 권 주중대사의 ‘회의록 관련 통화’ 진술 확보라는 소득을 얻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청문회를 참관한 뒤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답답함을 느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민동용·길진균 기자 mindy@donga.com
#원세훈#권영세#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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