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점거… 새벽 소음… 시위에 멍든 8·15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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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단체 일부시민 대학생, 서울광장-여의도 한강공원 점령

불법 천막노숙 15일 오전 5시 50분경 서울시청 바로 앞 보행로에 통합진보당 서울시당의 천막(오른쪽)이 설치돼 있고 그 안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잠을 자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천막을 친 장소는 보행로로 서울시에서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는 곳이다. 서울시는 서울광장 사용신고서에 이곳을 ‘절대사용금지구역’으로 못 박고 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배수로를 경계선으로 오른쪽은 사용허가가 나오지 않고 왼쪽은 허가가 나온다. 왼쪽에 보이는 4면이 막으로 가려져 있는 천막은 사용허가를 받은 민주당 천막 당사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불법 천막노숙 15일 오전 5시 50분경 서울시청 바로 앞 보행로에 통합진보당 서울시당의 천막(오른쪽)이 설치돼 있고 그 안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잠을 자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천막을 친 장소는 보행로로 서울시에서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는 곳이다. 서울시는 서울광장 사용신고서에 이곳을 ‘절대사용금지구역’으로 못 박고 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배수로를 경계선으로 오른쪽은 사용허가가 나오지 않고 왼쪽은 허가가 나온다. 왼쪽에 보이는 4면이 막으로 가려져 있는 천막은 사용허가를 받은 민주당 천막 당사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광복절인 15일 서울 도심의 새벽은 소음과 불법으로 얼룩졌다. 14일 밤 집회를 마친 좌파 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 등 2000여 명이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노숙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무질서가 난무한 것이다.

○ 소음 얼룩진 유례없는 대규모 노숙

15일 오전 2시 20분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전날 오후 7시부터 연달아 열린 세 개의 집회 중 마지막인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문화제가 막 끝난 터라 상당히 어수선했다. 집회 사회자는 “광장 동편에서 영화가 시작된다”고 알렸다. 집회 참가자들이 스크린 앞으로 몰려들었다. 이 대회를 주최한 곳은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전국공무원노조, 한국진보연대 등 수십 개의 단체가 결성한 8·15자주통일대회추진위원회였다.

스크린에 상영된 영상물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 제작한 ‘백년전쟁’이란 다큐멘터리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하와이안 갱스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국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묘사해 역사 왜곡 논란을 촉발했던 영상물이다.

오전 3시 20분. 청중석에 있던 기자가 소음을 측정해 봤더니 최대 83dB(데시벨)이 나왔다. 철도변 기차가 지나갈 때와 비슷한 소음 수준이다.

같은 시간 광장의 서쪽에서는 인터넷방송국인 주권방송의 ‘라디오 반민특위’ 생방송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여성 사회자가 6·25전쟁에서 여러 기념비적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두고 “못난 사람일수록 오래 산다”고 말하고, 박근혜 정부를 향해 “× 같은 새끼들 염병 떨고 있네”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곳의 소음도 80dB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서울광장 양쪽에서 벌어진 두 행사는 오전 4시까지도 확성기 볼륨이 줄지 않은 채 계속됐다. 이날 새벽 서울광장에서 약 550명이 텐트와 돗자리를 펴고 노숙을 했다.

밤샘 소음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묵는 주변 호텔들은 혼쭐이 났다. 서울광장 옆 플라자호텔 관계자는 “호텔 프런트에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자겠다는 외국인 투숙객의 항의 전화가 30통 이상 걸려왔다”고 밝혔다. 프레지던트호텔 관계자도 “약 20개 방에서 40통의 항의 전화가 왔다”고 전했다. 남대문경찰서에도 인근 주민들의 소음 관련 신고가 10건 가까이 들어왔다. 서울시에서 규정한 광장사용 소음기준은 야간 기준으로 60dB 이하(집회 시위는 70dB)다.

14일부터 15일까지 서울광장을 사용한 국정원 시국회의, 민주노총, 8·15대회추진위 측은 경찰에 집회 신고만 했지 서울광장의 관리주체인 서울시에는 사용 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집회와 야간 노숙에 대해 전혀 신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불법으로 광장을 사용한 집회 개최 단체들에 정상 사용금액(한 시간에 m²당 10원)의 1.2배에 해당하는 변상금을 물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통합진보당 서울시당과 부산울산경남지역대학생연합은 서울시청 정면의 보행로에도 각각 천막 4동과 2동을 쳤다. 이 보행로는 비상시 소방도로로 이용되기 때문에 천막 같은 시설물을 설치할 수 없다. 광장 잔디밭에서 텐트를 치고 술을 마시거나 잠자는 모습도 여럿 눈에 띄었다. 주최 측도 참가자들에게 잔디밭에서 자면 안 된다고 알렸지만 참가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울광장뿐 아니라 여의도 한강공원에도 14일 오후 가로 3m, 세로 4m 크기의 천막 64개가 설치됐고, 15일 새벽 여러 곳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서울광장 시위대 중 일부가 관광버스 34대에 나눠 타고 여의도로 몰려간 것이다. 한강공원 그늘막 설치 기준에 따르면 한강 공원에는 2면 이상 개방 가능한 소형 그늘막(가로 2.5m, 세로 3m)만 설치할 수 있다. 하천법 제46조에 따라 규정돼 있지 않은 크기의 텐트를 칠 경우엔 과태료 100만 원이 부과된다. 한강 여의도안내센터는 해당 천막들을 규정에 어긋난 것으로 판단해 한강사업본부에 보고했다.

○ 도심서 곳곳 경찰과 충돌

15일 아침이 되자마자 시위가 본격 시작됐다. 오전 8시 반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에서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학생 등이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기습 시위를 벌이다 116명이 불법 도로점거 등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오후에도 도심 곳곳에서 시위와 집회가 동시 다발적으로 열렸다. 특히 오후 2시 반경 서울역에서 8·15 평화통일대회를 마치고 서울광장으로 행진하던 8·15대회추진위 소속 참가자 1500여 명은 보신각 앞 종로 양방향 8차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수차례 경고방송을 하다 오후 3시경 물대포를 발사해 이들을 해산시켰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시위현장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쏜 것은 3월 충남 당진 현대제철 사태, 지난달 21일 울산 ‘희망버스’ 행사 이후 이번이 세 번째로 서울에서는 처음이다.

경찰이 이날 불법 도로점거 및 경찰폭행 등의 혐의로 연행한 시위 참가자는 아침 연행자를 포함해 총 301명이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우리 민족의 광복을 기념하는 뜻깊은 날에 8·15 행사를 빙자하여 서울 도심 곳곳에서 도로점거 등 불법 폭력시위가 발생하고 300여 명이 체포된 점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며 “합법적 집회는 보장하되 이번과 같은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현장 불법행위자는 물론이고 배후세력까지 철저하게 밝혀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백연상·김성모 기자 baek@donga.com
#시위#서울광장#한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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