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신뢰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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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신뢰 결여된 상태서 시행… ‘퍼주기’ 논란에 휩싸여
北도발 악순환 끊으려면 도발할땐 응징하고 협력엔 보상으로 응수해야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방학을 맞아 다시 미얀마를 찾았다. 넉 달 만에 다시 본 양곤의 외형은 크게 바뀌었다. 상습 정체를 빚던 양곤대 근처 고가도로가 완공됐다. 거리에 차가 많아지고 또 좋아졌다.

그런데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동차를 렌트하는데 저녁마다 그 차를 우리 숙소가 아닌 렌터카 회사에 보관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나라에도 그런 법은 없다며 설득해봤지만 막무가내였다. 외국인인 우리가 그 차로 무엇을 할지 못 믿겠다는 것이었다.

한숨을 내쉬고 다시 생각했다. 평균임금이 10만 원 정도인 이 나라에서는 낡았더라도 자동차는 큰 재산이겠거니 했다. 거의 평생 외국인을 못 만나고 살았던 사람들이니 못 믿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현지 물가를 감안할 때 턱없이 높은 사용료를 내면서 빌린 차를 24시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왠지 속는 것 같아 계약을 해지하고 불편하더라도 당분간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로 못 믿으니 삶이 이렇게 불편하구나. 그러다가 문득 신뢰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경제학자들의 말이 떠올랐다. 미국이 변호사들의 천국인 것은 이민으로 시작된 나라라서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촌평을 들은 기억도 났다.

막상 불신이 주는 불편을 겪어보니 신뢰가 거래비용을 줄여주는 사회자본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그렇다면, 미국이 30년 장기대출로 집을 장만하고 신용카드 두어 장이면 현금이 필요 없는 신용사회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제학자, 사회학자들도 나름대로 답이 있겠지만 정치학자들은 그 답을 국가에서 찾는다. 정부의 강제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법적, 제도적 틀 속에서 신용과 신뢰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국가 사이는 어떤가? 국가 위에 군림하며 그 행동을 규율하는 세계정부가 없다는 의미에서 무정부 상태라고 불리는 국제정치에서 신뢰는 어떻게 쌓이고 기능하는가?

실로 국제관계에는 신뢰가 작동하지 않아 힘에 의존하고 힘이 모자라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살벌한 권력정치가 펼쳐진다는 것이 주류 국제정치이론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기치로 내세운 신뢰외교란 이론적 근거가 희박한 것이 아닌가?

대안이론이 있다. 출발점은 외교의 기본 원칙인 상호주의다. 국교를 열고, 공관을 개설하고, 비자를 면제하고 하는 모든 외교관례가 상호주의 원칙을 따른다. 그런데 사실 상호주의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한다. 더불어 살다 보니 불가피한 거래를 하면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이 서로 맞물리면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주의의 핵심은 동시성(同時性)과 등가성(等價性)에 있다.

거래를 하면서 신뢰가 쌓여 외상거래가 이루어지면 동시성이 완화된다. 에누리를 해주거나 덤을 얹어주면 등가성이 완화된다. 동시성과 등가성을 엄격히 적용하면 구체적 상호주의, 그것이 완화되면 포괄적 상호주의라고 한다. 포괄적 상호주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되면 신뢰사회라고 할 만하다.

포괄적 상호주의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는 장래에 다시 만날 가능성이다. 그래야 외상 거래가 가능하다. 둘째는 제3자의 존재다. 신용 있는 고객을 지키려고 에누리를 해주고 덤을 얹어준다. 그 때문에 손해를 본다면 제3자에게서 벌충할 수 있다.

국제질서가 안정돼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다자적 국제기구와 제도가 활성화되면 국제관계에서도 포괄적 상호주의, 즉 신뢰가 작동할 수 있다. 오늘날 국제관계가 바로 그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대안이론의 주장이다.

남북관계에 그 원리를 적용한 적이 없지 않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그것이다. 그때 정부는 선공후득(先供後得)이라며 동시성을 완화한 포괄적 상호주의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뢰가 결여된 상태에서 외상 거래를 하는 것과 같으니 결국 ‘퍼주기’ 논란에 휩싸이고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해 좌초하고 말았다.

당시의 상호주의는 몇 가지 점에서 오류가 있었다. 우선 순서가 잘못됐다. 구체적 상호주의로 거래를 거듭해 신뢰가 쌓인 다음 포괄적 상호주의를 적용했어야 했다. 또 ‘우리 민족끼리’를 앞세우면서 제3자의 개입을 경계해 다자적 균형이 이루어질 여지가 없었다.

결정적인 오류는 ‘선의에는 선의, 악의에는 악의’라는 상호주의의 핵심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의와 선의가 맞물린 남북관계 ‘개선’의 가시성에 집착한 나머지 악의에 악의로 답하지 못했다. 1999년, 2002년 두 차례 서해에서 도발을 당하고도 문제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신뢰의 핵심은 선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따른 행동이 주는 예측 가능성에 있다. 도발을 하고도 보상을 받고, 더 큰 보상을 바라고 더 큰 도발을 하는 악순환을 끊고, 도발에는 응징으로, 협력에는 보상으로 응수하는 상호주의의 실천이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 그러다 신뢰가 쌓이면 선공후득을 할 수 있고 다자안보협력도 가능해진다. 멀리 보고 넓게 봐야 한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규율#신뢰#남북관계#햇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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