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일 작가 “언젠가 사라질 고향 할머니들의 이야기 담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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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매구 할매’ 낸 송은일 작가

몇 해 전 소설가 송은일 씨(49·사진)는 전남 고흥군 두원면 고향 마을에 갔다. 마침 마을 노인정에서 덜 늙은 할머니들이 더 늙은 할머니를 위해 점심상을 차리는 날이었다. 송 씨는 상차림을 담당하는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할머니들이 모인 노인정 문을 열게 됐다.

그곳에선 100명 가까운 70∼90대 할머니들이 ‘넓고 긴 방의 사면 벽에 등을 댄 채 한 무릎을 세우고’ 붙어 앉아 있었다. 마치 미라처럼 보이던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송 씨는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고 한다. 송 씨가 인사를 하자 할머니들이 붙잡았다. “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쓴담시롱야? 내 이약 잔 써주라(내 이야기 좀 써주라).”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소설 ‘매구 할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송 씨를 만났다. 그는 “그때의 강렬한 기억이 소설을 쓰게 했다. 고향 마을도 언젠가 사라질 텐데, 한 시대가 가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네 할머니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매구란 천년 묵은 여우가 변한, 이상하고 신기한 짐승. 소설 속 매구는 간사한 구미호가 아니라 사람을 보살피는 큰 할머니를 뜻한다.

송 씨는 자신의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상상의 공간인 ‘계성재’를 창조했다. 소설은 계성재 20대 손인 소설가 ‘은현’이 고향 집으로 귀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액자소설 형식으로 전개된다. 은현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집안 기록 ‘계성재가솔부’를 바탕으로 계성재를 지키는 100세 넘은 노인 ‘매구 할매’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다.

해방과 전쟁 통에 죽은 남편, 아들을 대신해 집안을 지킨 17대 종부 여례당 권씨가 액자소설의 중심인물이다. 남성을 대신해 가문의 전통을 지켜온 여장부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소설 속에서 현실감 넘치게 펼쳐진다. 송 씨는 “액자 형식을 택한 이유도 과거 이야기를 살아 있는 현실로 보여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송 씨는 2000년 여성동아에서 당선된 장편 ‘아스피린 두 알’을 시작으로 ‘매구 할매’까지 13년간 장편만 10편을 쓸 만큼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꼽힌다. 그는 “고향을 오가며 할머니들을 봤더니 어느새 내 몸 안에 할머니들이 들어와 있었다. 아는 이야기를 쓰니 억지로 쥐어짜내지 않고 술술 편안하게 썼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송은일#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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