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교각살우는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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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국제부장
하종대 국제부장
개성공단이 풍전등화다. 북한이 조만간 개성공단 파행사태와 관련해 명확한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부는 ‘중대 결단’을 불사할 태세다. 여기엔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가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남북경협보험금을 조만간 지급할 것으로 알려져 궁극적으로 개성공단 폐쇄가 현실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4월 9일 북한의 일방적인 근로자 철수 조치로 시작된 개성공단 파행사태는 전적으로 북측의 책임이다. 북한이 핑계로 든 ‘남조선 괴뢰패당과 보수 언론의 못된 입질’은 사실 개성공단과 하등 관련이 없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달러 박스’라느니 ‘유사시 개성공단 파견 직원이 인질이 될 수도 있다’라는 언론 분석이 이유가 될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지난달 26일 열린 제6차 실무회담에서 남측 언론의 인질보도와 한미연합 군사연습 등을 개성공단의 안정적 가동을 저해하는 정치군사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같은 이유를 들어 가동 중단을 반복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개성공단 재가동 요구에 성급히 응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성공단 폐쇄 불사 가능성이 거론되는 건 너무 앞서나가는 감이 있다. 바가지가 밉다고 쪽박을 깨서야 되겠는가.

개성공단은 단순히 123개 입주 기업과 5만3000여 북한 근로자의 생존권만 달린 문제가 아니다. 개성공단의 파행은 연간 4억6950만 달러에 달하는 남측 기업의 매출 손실과 8700만 달러에 이르는 북한 근로자의 임금 손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측의 관련 기업은 6000여 개나 되고 북측의 근로자 가족은 30만 명에 이른다.

이보다 중요한 게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높여준다. 상호의존성의 강화는 남북 간의 무력충돌 및 전쟁 방지 효과로 이어진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마지막 남은 남북의 소통 창구도 사라진다. 공존과 공영 대신 갈등과 대결만 남을 뿐이다.

북한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문하는 건 당연한 요구다. 하지만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북한이 3, 4, 6차 실무회담에서 제시한 재발방지 조항을 살펴보면 흡족하지는 않지만 북한 나름으론 약간씩 양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낭설이 많았지만 북한은 개성공단 직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고 그대로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고 입주 기업들은 전한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할 뜻이 없다는 증거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주들이 최근 정부에 유연성 발휘를 촉구한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인들이 통일 과정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사전 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동독 경제를 재건하느라 통독 이후 20여 년간 2조 유로(약 2961조 원) 이상을 퍼부었지만 여전히 지역 격차는 30%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통일 전 자금 지원은 통일 후 비용보다 10배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같은 분단국인 중국은 매년 50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대만에 특혜를 준다. 갈수록 늘어나는 대만 젊은이들의 독립 여론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중국의 지도자들은 엄격하게 정경분리(政經分離)와 선공후득(先供後得) 원칙을 적용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대만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상호주의’를 추구하되 이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고 큰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여정이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지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
#개성공단#북한#매출 손실#소통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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