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동용]이시영의 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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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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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루크를 사랑하던 여성들은 절규했다. 환상적인 그 얼굴 망가지면 어떡하느냐고. 영화 ‘나인 하프 위크’(1986년), ‘와일드 오키드’(1990년) 등에서 우수어린 표정으로 뭇 여심을 앗아갔던 그가 22년 전, 우리 나이 마흔에 권투를 하겠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팬들의 우려와 권투계의 비아냥거림 속에 1991년 5월 열린 그의 프로복싱 데뷔전은 예상대로 실망스러웠다. 루크는 링에서 춤을 추며 상대를 조롱하는 등 광대 짓을 해댔고 시합은 클린치의 연속이었다.

▷루크는 3년간 8전 6승 2무를 기록했다. 여섯 번의 승리 가운데 네 번이 KO승이었다. 상대가 뛰어난 복서들이 아닌 까닭도 있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했다. 오뚝하던 코는 주저앉았고 광대뼈는 내려앉았다.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얼굴이 배우를 할 수 없을 만큼 흉측하게 변한 그는 2008년 영화 ‘레슬러’의 주연으로 부활할 때까지 10년 넘게 슬럼프에서 헤매야 했다.

▷그나마 루크는 10대에 아마추어 복싱선수로 30경기를 해봤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를 통틀어도 유명 연예인이 실력 있는 스포츠 선수로 변신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르망 24시간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2등을 했던 영화배우 폴 뉴먼 정도랄까. 당연한 일이다. 이미 ‘현대의 권력’이라는 연예인으로 명성을 쌓았는데 뭐가 아쉬워서 뼈를 깎는 훈련과 고통을 견디겠는가. 더구나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영화배우 이시영 씨가 아마추어 여자복싱 국가대표가 됐다. ‘판정 논란’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이다. 3년 전 불방된 방송사 단막극에서 권투선수 배역을 맡은 걸 계기로 시작했다는 복싱이 어느새 이 수준까지 올라왔다. 24일 열린 최종선발전 김다솜 선수와의 경기 동영상을 하이라이트로 보다가 문득 중학생 시절 TV에서 봤던 아마추어 남자복싱 밴텀급 문성길 대 허영모의 경기가 떠올랐다. 3차례의 라이벌전에서 끝내 ‘돌주먹’ 문성길의 벽을 넘진 못했지만 허영모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다만 그는 ‘펀치에 체중을 싣지 못하는 약점’을 가진 복서였다. 이 씨와 허영모가 겹쳐 보였다.

민동용 정치부 기자 mindy@donga.com
#이시영#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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