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엄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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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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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엄마가 동창회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적어도 내 아이들은 그랬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적에 나는 비교적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편이라서 아이들과 자주 장난치고 텔레비전을 보며 잘 놀곤 했는데, 그러다가 불쑥 화를 낼 때가 있었다.

“너희들, 해도 너무 한다. 벌써 한 시간째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잖아!”

평소와 다른 엄마의 격한 반응에 아들은 다 안다는 듯이 이렇게 대꾸했다.

“엄마, 오늘 동창들 만났지? 그러니까 동창회 나가지 말라니까.”

아닌 게 아니라 동창회를 다녀온 터라 신기해서 바라보는 나에게 아들이 덧붙이는 말.

“내 친구들도 그러는데 엄마가 동창들과 만나고 오면 항상 화를 내신대. 왜 엄마 친구의 아이들은 다 공부를 잘하는지 모르겠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궁리는 안 하고, 동창들을 만나지 말라는 해결책을 내놓는 아들과 실랑이하던 때로부터 몇 년 후 갑자기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라는 말이 유행어로 떠올랐다. 아마 어느 집이나 사정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비교하지 않아야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동창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친구 아들은 참 의젓하고 공부도 잘하고 속도 깊어서 내 집에 있는 아들과 저절로 비교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엄친아가 아닌 우리 아들이 수능을 보러 가던 날에 내가 덕담이라고 “얘, 네가 노력한 만큼 성과 있길 바란다”고 했더니 아들은 손사래를 치며 질색했다.

“엄마, 노력한 만큼이면 안 돼. 대박 나야 해.”

시험 날 아침, 우리 모자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걸 알고 있으니 양심은 있다 싶어서 나는 웃음이 나왔고, 대박을 꿈꾸는 아들은 속내를 들킨 게 멋쩍은지 웃음을 머금었다. 어쨌든 아들은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안달하지 않아도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가고,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엄마 또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

몇 달 전 80대의 유명한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고 다른 길로 간 게 섭섭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그 아이는 내게 효도 안 해도 돼요. 사십이 넘어 얻은 늦둥이라서 그런지 태어난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서 그것으로 효도를 다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맞다. 항상 기본을 잊고 욕심을 부리는 게 탈이다.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것으로 충분한데 부모의 끊임없는 욕심이 부모 자식의 귀중한 관계를 망친다. 어차피 그들의 세상은 따로 있고, 그들의 삶은 그들에게 맡기면 되는데 말이다.

엄친아가 아니어도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나의 아이로 태어나준 게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가.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기쁨인 것을!

윤세영 수필가
#엄친아#동창회#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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