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5월아, 오지 마라… 그 미친 상처 도질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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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공선옥 지음/264쪽·1만3000원/창비

공선옥이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펴냈다. 소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던 당시 피해자들의 처절한 삶을 병렬적으로 그렸다. 왼쪽 작은 사진은 5·18민주묘지에서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 창비 제공·동아일보DB
공선옥이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펴냈다. 소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던 당시 피해자들의 처절한 삶을 병렬적으로 그렸다. 왼쪽 작은 사진은 5·18민주묘지에서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 창비 제공·동아일보DB
불편한 소설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책장 가득 배어 있어 쉽게 책장을 넘기기 힘들다. 게다가 이를 기술하는 작가의 태도도 불편하게 만든다. 철저히 웃음을 배제한 채 별다른 감정의 고조도 없이, 피해자들의 아픔만을 마지막 책장까지 지독하게 나열한다. “이런 지옥 같은 아픔을 외면할 수 있겠느냐”고 강압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주인공 정애의 삶은 어떤가. 열다섯 정애는 아버지가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해 집을 떠난 뒤 실성한 어머니와 동생인 순애 영기 명애를 돌봐야 한다. 1970년대 전라도의 한 시골은 이런 불쌍한 가정을 돌볼 만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넉넉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정애의 돼지와 닭을 훔쳐가고 심지어 정애와 순애를 겁탈한다. 순애가 병으로 죽고, 어머니는 애를 낳다가 애와 함께 죽고, 아버지도 사고로 죽는다. 이 와중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지고 정애는 다시 공수부대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급기야 실성을 한다.

이런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사회적 폭력 속에 무방비하게 놓인 한 여성의 비극적인 인생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애의 동생 명애도 정신이상을 보이고, 별다른 교육도 받지 못하고 기술도 없는 영기는 건달이 된다. 정애의 친구인 묘자 역시 공수부대원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자인 남편과 결혼하지만, 결국 남편의 정신이상을 견디다 못해 그를 살해한다. 소설에서는 이런 불행하고, 붕괴되고, 절망하는 삶이 이어진다.

심지어 소설 속 가해자로 등장했던 사람들도 결국은 하나둘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된다. 결국 1980년 광주는 모든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피해만 남겼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파렴치한 인사로 나오는 이장의 아내 박샌댁은 이렇게 읊조린다.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미친 거여.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그래 그런 거여. 정애 자네만이 미치지 않은 사람이여.’

1980년 광주가 남긴 상처와 고통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을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앞서 ‘피어라 수선화’(1994년) ‘라일락 피면’(2007년) ‘내가 가장 예뻤을 때’(2009년) 등 소설을 통해 광주의 아픔을 노래했던 작가이기에 이번 작품은 아쉬운 점이 많다. 정애 등 10여 명에 달하는 ‘광주의 증인’들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지금 이 시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다.

작가가 2년 전 펴냈던 장편 ‘꽃같은 시절’을 재밌게 읽었다. 무자비한 개발 횡포를 비판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작가가 그립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 앞에 작가부터 경직된 것은 아닐는지. 슬픔은 작가가 쥐어짜는 게 아니라 작품의 행간을 통해 독자에게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공선옥#5·18 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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