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푸에블로’ 나포때도 외교관 불러 “방공호 파라” 심리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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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우드로윌슨센터, 당시 루마니아 대사관 외교문서 공개

북한이 1968년 1월 23일 미국 해군 정보함인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직후에도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불러 모아 “미국의 공격이 예상되니 대사관에 방공 참호를 파라”고 심리전을 벌인 사실이 외교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냉전사 연구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는 당시 루마니아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두 건의 외교문서를 입수해 8일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최근 북한이 평양 주재 외교관과 외국인들에게 ‘한반도 긴장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문서들은 우드로윌슨센터가 2006년부터 한국 북한대학원대와 함께 진행해 온 북한국제문서조사사업(NKIDP)으로 입수한 것이다.

루마니아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관리들은 푸에블로호 나포로 북-미관계가 악화된 2월 26일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불러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돼 있고 미제와 남조선 박정희 정부가 언제라도 전쟁을 도발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며 “모든 대사관은 반항공 벙커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루마니아 외교관은 “벙커를 얼마나 깊게 어떤 모양으로 언제까지 파야 되느냐”고 물었다. 북측은 외교관 관리 사무소가 전문가들을 대사관으로 보내 관리 규정에 따라 어디에 어떻게 참호를 만들지 결정하고 설계와 승인, 공사 시작 등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으로 보복할 움직임을 보였고 북한도 전국적으로 이에 대비한 정황이 문서에서 확인됐다. 평양과 외곽의 전반적인 전쟁 대비 상황에 대해 전문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전반적인 긴장 상태가 평양을 압도하고 있다. 군대 이동과 방공 훈련이 계속되고 있다. 비행기와 투광조명을 이용한 야간 공습 훈련이 강화되고 있다. 평양과 주변 지역에서는 6·25전쟁 당시의 방공 벙커가 복원되고 있다. 참호와 구덩이를 파고 차들은 위장망을 뒤집어쓰고 운행하고 있다.”

3월 1일 평양 주재 루마니아대사관은 헝가리 외교관이 전한 정보를 본국에 보고했다. 김창봉 북한 인민무력부장(한국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이 2월 하순 평양 주재 헝가리대사를 만나 “5월로 예정된 자신과 군 관리들의 부다페스트 방문 일정을 4월 초순으로 당겨줄 수 없느냐”고 채근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김 부장은 한반도 정세 때문에 내부적으로 시기가 결정된 것이라며 4월 20일 이후에는 해외여행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마니아대사관은 방공 참호 건설 요구와 연관지어 “적어도 2개월 정도는 한반도 상황이 지금 상태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본국에 보고했다.

우드로윌슨센터 제임스 퍼슨 박사는 “최근 북한의 평양 주재 외교관 철수 권고가 미국과의 긴장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1968년에는 실제로 미국과의 전쟁이 예상되니 사회주의 국가들이 단결해서 좀 도와달라는 취지의 액션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이번 외교관 위협을 할 때 러시아와 중국 등 힘센 나라에는 “나갈 계획이 있느냐”고 의향을 묻는 식으로, 제3세계의 약한 나라에는 “그냥 나가라”는 식으로 차별대우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란 ::

북한은 1968년 1월 23일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강제로 나포했다. 당시 배에는 함장 (중령)을 비롯한 6명의 해군 장교와 수병 75명, 민간인 2명 등 총 83명이 타고 있었다. 28차례에 걸친 비밀협상 끝에 그해 12월 생존 승무원 82명과 시신 1구가 판문점을 통해 미국 측에 넘겨졌고 선체와 장비는 북한에 몰수됐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푸에블로호나포사건#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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