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미 원자력협정은 어른 몸에 맞지 않는 아이 옷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0일 03시 00분


한국과 미국이 2014년 3월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요구하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에 대해 미국은 예외 없이 재처리와 농축을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적용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접촉에서 드러난 양국의 견해차가 너무 커 협상 타결 전망이 불투명하다.

미국은 한국이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하게 되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도 같은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핵 도미노’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의 손발이 묶여 있는 사이 국제 룰을 어기고 핵을 개발했다. 에너지 걱정이 없는 산유국 중동과는 처지가 너무 다르다.

1974년 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당시 한국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없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23기의 원전으로 전력의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고, 7기의 원전을 건설하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에 수출까지 한 원전 강국이 됐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북한이 3차례 핵실험을 했지만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원칙을 고수해왔다. 우리나라의 일부 과학자가 오래전 호기심에 딱 한 번 해본 소규모 핵물질 실험에 대해 미국이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원자력 협정개정은 우리에겐 절박하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사용후핵연료는 버리면 폐기물이고, 재처리하면 연료다. 재처리 길만 터주면 핵연료를 얻을 수 있는데도 우라늄을 사서 쓰는 것은 불합리할뿐더러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사용후핵연료는 우리처럼 좁은 국토에서는 처리할 곳도 마땅치 않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원자력 환경을 외면하고 40년 전 불평등 협정을 강요하는 것은 어른에게 아기 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이 너무 경직된 자세로 협상에 나서면 국내 일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한국의 핵무장론을 오히려 자극할 우려가 있다. 우리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하고 한미동맹을 깨면서까지 핵 개발을 시도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은 한국의 현실을 바로 보고 한미동맹 정신에 입각해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성의를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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