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전문가, 전통공예품 ‘대모’로 변신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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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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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참이슬’ 이름지어 히트… 나전칠기에 반해 장인 작품 모아와
전통공예는 판로개척이 승부수… 서울역 한복판 판매점 뜻밖 성황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는 우연히 들른 나전칠기 전시회에서 한국 목가구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국 전통공예품 컬렉터이자 후원자로 나서게 됐다. 그는 “수집만으로는 공예품 시장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판매 채널인 ‘하이핸드코리아’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는 우연히 들른 나전칠기 전시회에서 한국 목가구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국 전통공예품 컬렉터이자 후원자로 나서게 됐다. 그는 “수집만으로는 공예품 시장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판매 채널인 ‘하이핸드코리아’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역에 도착하면 승강장을 빠져나오자마자 ‘하이핸드코리아’라는 전통 공예품점을 만나게 된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이후 이곳은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차역 한복판에 옻칠 젓가락, 나전 벽걸이에서부터 고급 목재 반닫이에 이르기까지 고급 공예품점이 있다는 게 낯설기 때문이다.

이곳 주인이 ‘처음처럼’ ‘참이슬’ ‘힐스테이트’ 등 숱한 히트 브랜드를 만들어낸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58)란 걸 알게 되면 좀 더 의아해진다. 상업주의의 최첨단에 선 브랜드 아이덴티티(BI) 전문가가 전통 공예품점을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연은 2006년 국립박물관의 나전칠기 전시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유럽과 이탈리아 가구 마니아였던 손 대표는 이 전시회에서 한국 전통 목가구에 매료됐다. 그는 “특히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시회에 나온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 주요 작품들이 모두 일본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손 대표는 21세기 한국의 나전칠기는 어떤 것이었는지 후대에 보여주고 싶어 무턱대고 수집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작품이 나전칠기만 250점, 소반은 300점에 달한다.

몇 년간 전 재산을 털다시피 전국의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수집하던 그는 한국 공예품 시장 자체가 죽어가는 데 안타까움을 느꼈다. 손 대표는 “장인들이 몇 년간 공들여 작품을 제작해도 팔 곳을 못 찾아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판로를 개척하지 않고선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2009년부터 자비를 들여 호텔과 백화점 갤러리 등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러다 지난해 서울역에 매장을 열기로 결심했다. 코레일 측이 한국 문화에 홍보가 될 만한 매장을 열기 원했지만 주인을 못 찾아 두 번이나 유찰된 곳이었다.

모두가 안 될 거라며 만류했다. 손 대표 역시 “소명이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브랜드 마케팅으로 번 돈을 거의 모두 쏟아부어야 했다”고 말했다.

우연히 들르는 손님이 많은 특성상 대량 주문을 통해 단가를 낮춘 대중적인 소품도 갖췄다. 재고 부담이 있지만 후원한다고 생각하고 한 번에 300∼500점씩 주문해 2만∼3만 원까지 단가를 낮췄다. 기술은 뛰어나지만 트렌드는 놓치기 쉬운 장인들에겐 직접 디자인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또 모든 제품은 장인의 실명을 넣어 판매하도록 했다.

결과는 뜻밖에도 성공적이었다. 전통 공예품의 기품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한 인테리어 소품과 목가구에 소비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들어가는 돈이 훨씬 많지만 올 들어 월 매출 6000만 원을 넘겼고 연말엔 1억 원을 넘긴다는 목표도 세웠다”며 “한국적인 것의 힘과 아름다움을 신뢰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공예품으로 돈을 버는 데는 관심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통 공예품 시장이 자생적으로 돌아가는 궤도에 오를 때까지가 자신의 역할이고 그 뒤엔 본업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이달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출품할 ‘한국공예의 법고창신전’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그는 “선조들의 전통을 동시대인들과 향유하고 다시 후대로 보내줄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며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손혜원#크로스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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