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효]홧김에 질러보는 핵무장론 득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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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객원논설위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효 객원논설위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방미 협의를 마치고 오늘 귀국하면 다음 주 금요일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서울에 온다. 한미 외교 수뇌부 간의 교차방문은 북한 당국의 언동에 엄중한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새로 출범한 양국 정부 간 공조를 과시하는 효과 외에, 5월 한미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의미를 지닌다. 환한 얼굴로 양국 정상이 악수할 장면 말고는 다음 달에 나올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바로 지금 4월에 협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양국이 조율해야 할 최우선 의제는 물론 대북정책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4년간 북한 지도부를 접하면서 그들의 실체와 의도를 정확히 알게 됐다. 미국은 자신이 견지해 온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북한의 도발을 인내하자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안보태세하에 북한이 옳은 길을 선택하도록 일관된 노력을 펴자는 뜻임을 확인하면서 한국 정부의 의중을 물어올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북한의 호응 없이 우리 측의 일방적인 희망에만 근거를 둔 실체 없는 신뢰를 전제로 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한미 대북정책 공조의 덕목은 진중함이다.

핵을 포기하지 말라는 김정일의 유훈을 김정은 정권의 그 누가 거스르겠는가. 협상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는 이제 접어야 한다. 북핵 능력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한미 군사태세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긴장 조성과 도발에 이은 대화 재개와 국제사회의 경제지원 수순을 절대공식으로 여기는 북한 지도부의 인식을 바꿀 만큼 단호한 한미 군사공조를 재정비해야 한다.

2년 8개월 남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준비에도 매진해야 한다. 지금처럼 튼튼한 한미연합사 체제를 새로이 꾸릴 방안은 얼마든지 구상하기 나름이다. 나아가 핵과 미사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그들이라면 그러한 북한 자체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것은 통일의 당사자인 우리나라가 주도해야 할 문제이며, 그 방안이 창의적이고 구체적일수록 미국의 지지와 협력을 끌어내기에 용이할 것이다. 북한 변환 정책에 있어 중요한 변수인 중국과의 교감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중 3자 간 전략대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계획은 바람직하다. 우선은 1.5트랙(반관반민·半官半民) 비공개 협의로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카운트다운에 몰리고 있는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 문제는 이명박 정부 때도 3년씩이나 미국과 씨름한 사안이다. 기후변화 앞에 원자력발전 수요는 날로 커지는데 핵연료를 비싸게 들여와야 하고 핵폐기물은 포화상태 직전이다. 우리 국민은 핵무기를 제조할 의사가 전혀 없는 한국에 미국이 왜 우라늄 저농축과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pyro-processing) 권한을 주려 하지 않는지 의아할 것이다. 미국 국무부의 비확산 부서는 한국의 비핵화 의지가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북핵을 앞두고 홧김에 질러보는 한국 핵무장론(論)은 득(得)이 될 것이 없다.

한국은 세계 5대 원자력 강국이 되었다. 미국의 동맹국 중에 한국처럼 빨리 변화하고 성장한 나라도 없다. 한국의 성공사례는 동맹국인 미국의 자랑이기도 하다. 이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아내는 새로운 한미동맹을 제시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냉철한 사람이다. 대신 자신의 고정관념을 더 나은 통찰과 논리로 깨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한미원자력협정 문제는 고위 당국자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하는 사안이다. 미 의회의 주요 지도자와 미국 원자력 업계의 지지와 협력도 이끌어내야 한다. 아무리 동맹지간이지만 쉬운 협상은 없다. 조기 타결에 집착하여 오래도록 후회할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치열한 설득의 노력과 승부를 거는 배짱이 필요하다.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에 한국이 동참하길 바랄 것이고, 작년 여름 좌초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의 재추진을 타진해 올 것이다. 중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고 이미 47개국과 무역장벽을 허물어버린 한국이 TPP 논의를 꺼릴 이유가 없다.

당장 한일관계가 급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나, 우리의 결정적 이해관계가 걸린 한반도의 안보 문제에선 한미일 협력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3국 간 안보 공조가 북한 문제와 한반도의 평화 보장에 초점을 두는 이상, 중국이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일본 정부의 한일 과거사 문제에 관한 퇴행적 언동을 강하게 경고했다. 한미 양국이 함께 인도주의 가치를 강조하며 일본의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 동북아 역내에 갇힌 사고와 배타적 민족감정만으로 외교를 하기엔 한국의 글로벌 위상과 감당해야 할 책임이 너무 커졌다.

김태효 객원논설위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thkim01@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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