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前단계’라고 방심하면 큰 코… 심-뇌혈관질환 걸릴 위험 30%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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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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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선하-김홍규 교수팀, 43만명 9년간 추적 관찰

사업가 박종근(가명·65) 씨는 계단을 오르거나 운동할 때 가슴이 뻐근하고 팔에서 힘이 빠지는 증상을 자주 느낀다. 벌써 10년째. 2009년 정기 건강검진에서는 “관상동맥(심장동맥) 3개가 심각하게 좁아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피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허혈(虛血)성 심장 질환이다. 협심증, 심근경색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병. 허혈성 심장 질환의 주 원인은 고지혈증과 고혈압, 비만, 흡연, 당뇨병이다. 박 씨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3년 전부터 약을 먹으며 혈압을 관리했다. 금연한 지는 7년이 넘었다. 뚱뚱하지 않고 콜레스테롤 수치 역시 높지 않았다.

다만 박 씨의 혈당은 10년 가까이 ‘당뇨병 전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 당뇨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정상 범위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다. 보통 공복 혈당이 dL당 125mg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분류한다. 당뇨병 전 단계는 dL당 100∼125mg. 박 씨의 공복 혈당은 dL당 105mg과 115mg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했다. 단 한 번도 당뇨병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가 허혈성 심장 질환을 앓게 된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뇨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당뇨병 전 단계에서도 심·뇌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기 때문. 최근 이를 입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와 김홍규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 연구팀은 1996∼2004년에 전국 17개 건강검진센터를 이용한 43만 명(남자 26만 명, 여자 17만 명)의 건강 상태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관찰했다. 국내 최대 규모, 최장 기간의 추적 관찰 기록이다. 관련 논문은 지난해 말 발행된 미국 당뇨병학회 공식 학회지에 게재됐다.

연구결과를 보니 당뇨병 전 단계일 때 심·뇌혈관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건강한 사람보다 30% 이상 높아졌다. 심·뇌혈관 질환은 심장과 뇌의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발생한다. 현재 한국인 사망 원인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심장 질환인 협심증, 심근경색, 심부전증과 뇌혈관 질환인 뇌경색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당뇨병 전 단계를 크게 ‘약한 단계’(공복 혈당 dL당 100∼109mg)와 ‘심한 단계’(dL당 110∼125mg)로 나눠 심·뇌혈관 질환의 진행 상황을 살펴봤다. 당뇨병 전 단계의 사람이 허혈성 심장 질환에 걸릴 확률은 건강한 사람보다 각각 17%(약한 단계), 30%(심한 단계) 높았다. 당뇨병에 걸린 이후에는 이 확률이 95%까지 껑충 뛰었다. 나이가 들면 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 연구팀은 이런 점을 통계처리에 반영했다. 나이와 함께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비만, 가족력 등 심·뇌혈관 질환에 걸릴 수 있는 위험인자를 모두 반영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이 경우 각각 6%(약한 단계), 11%(심한 단계), 70%(당뇨병 이후)씩 건강한 사람보다 심·뇌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다.

같은 방법으로 허혈성 뇌혈관 질환(뇌경색)에 걸릴 확률도 조사했다. 당뇨병 전 단계의 사람은 일반인보다 뇌경색에 걸릴 확률이 각각 13%(약한 단계), 38%(심한 단계), 114%(당뇨병 이후) 더 높았다. 김 교수는 “당뇨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혈당이 높아지고 있다면 식이 조절을 통해 체중을 감량하고 운동을 하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당뇨병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심·뇌혈관 질환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당뇨병 전 단계는 당뇨병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2002년 진행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 전 단계일 때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40% 정도가 4년 후 당뇨병에 걸렸다. 최근에는 당뇨병 전 단계에 이르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2011년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 검진 통계에 따르면 당뇨병 전 단계로 진단을 받은 남성 네 명 중 한 명 이상(26.3%)이 20, 30대였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당뇨병#심혈관질환#뇌혈관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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