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페라리의 아버지,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피닌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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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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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차를 만든 명(名)디자이너, 전설이 되다


1926년 9월 8일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의 주도 토리노. 한 남자가 갓 태어난 아들을 안아 올렸다. 이탈리아 자동차업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특유의 디자인 감각으로 이름을 날리던 바티스타 파리나. 그의 손에 안긴 아이는 훗날 ‘세계 최정상의 자동차 디자이너 가문’이라는 영예를 안겨줄 세르지오 파리나(사진)였다.

1930년 바티스타는 꿈에도 그리던 자신만의 디자인 전문 공방(카로체리아)을 설립했다. 가문의 성(姓)을 따 회사 이름을 피닌파리나로 지었다. 창립자 바티스타의 키가 작아 ‘작다(pinin)’는 애칭을 더했지만 이탈리아어로 ‘구체화(pininfarina)’라는 뜻도 된다. 피닌파리나에 일을 맡기는 고객들은 페라리 마세라티 롤스로이스 재규어 알파로메오 등 고급 명차 브랜드가 대다수였다.

피닌파리나는 곧 고급차 디자인의 대명사이자 이탈리아의 자랑이 됐다. 1961년 이탈리아 정부가 자국 산업 발전에 대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파리나 가(家)의 성씨를 피닌파리나로 개명할 것을 요청했을 정도였다.

1966년, 부친 바티스타의 사망으로 아들 세르지오는 회사의 새 수장이 됐다. 토리노공대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이미 20대 시절부터 피닌파리나의 일원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특히 1980년대 들어서는 페라리의 주요 모델 디자인을 도맡다시피 해 ‘페라리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세계 자동차의 역사에 숱한 명차들을 남겼다. 페라리의 역사적인 모델인 ‘엔초 페라리’와 ‘테스타로사’를 비롯해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벤틀리 ‘애저’, 알파로메오 ‘스파이더’ 같은 명차가 그의 손을 거쳤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일본 혼다, 프랑스 푸조 등 전 세계 자동차업체가 그의 회사를 찾았다. 피닌파리나는 디자인뿐 아니라 연간 3만 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능력까지 확보했다. 피닌파리나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1997년 대우자동차(현 한국GM) ‘누비라’와 2000년 ‘레조’, 2001년 현대자동차 ‘라비타’의 외관 디자인을 맡은 적도 있다.

노년기 세르지오 회장은 전국적인 명성을 등에 업고 1979년 이탈리아 개혁당 의원으로 선출돼 1988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다. 2005년에는 카를로 치암피 당시 이탈리아 대통령이 그를 종신 상원의원으로 임명했다. 회사는 2001년 장남 안드레아에게 물려주었으나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해 차남 파울로가 2008년부터 경영하고 있다.

2012년 7월 3일. 이탈리아 피닌파리나의 명예회장 세르지오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오랫동안 앓아 온 지병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향년 85세. 자동차 디자이너로, 또 정치인으로 이탈리아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일생이었다.

그가 아버지의 꿈을 이어 받아 전성기를 이끈 피닌파리나는 현재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2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최정상의 산업 엔지니어링 회사로 성장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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