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치료법 적용 쉬워졌지만… 비급여 남용 우려는 더 커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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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법원 판결은 국내 건강보험 체계에서 인정받지 못해온 임의비급여 진료를 제한적으로나마 공식 허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일단 법원이 의료기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의사들의 진료선택권은 더 커지게 됐다. 새로운 의료기술을 의료 현장에 도입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그러나 임의비급여 진료의 남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자들의 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병원 “신의료기술 빨리 도입될 것”

임의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 울타리 밖에서 이뤄져왔다. 가령 폐암에 걸린 환자가 국내에서 허가받지 못한 항암제를 원할 때 병원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판단에서 이 약을 사용한다. 병원은 “약의 사용이 불가피했다”며 임의비급여라고 건강보험공단에 설명했고, 환자는 이 약값을 보험 적용 없이 모두 부담했다.

이 같은 임의비급여 진료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병원이 입증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법원은 결국 이 형태의 진료가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했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문정일 병원장은 “(임의비급여 문제가) 의료계의 관례라는 점을 인정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문제점은 성실히 고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구홍회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려는 의사의 자율적인 의료행위를 인정받았다”며 “백혈병, 조혈모세포 이식 등 암 환자나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진료하는 분야에서 임의비급여 진료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환자들 혼란 가중

반면 그동안 정부의 ‘관리 범위’ 안에 있던 의료행위에 틈이 생겨 환자들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안전성 △유효성 △긴급성 △환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 병원은 임의비급여 진료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앞으로 열릴 파기 환송심에서는 환자의 동의가 있을 때까지 병원의 설명이 충분했느냐가 심리의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임의비급여 진료가 예외적으로 인정이 되면 병원이 환자에게 치료비를 추가로 청구할 가능성이 커진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자칫 의학지식이 부족한 환자들만 더 피해를 볼 수 있다. 의학적으로 필요하다는데 이를 판단해 동의할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여의도성모병원 사례는 병원이 보험 혜택이 가능해도 환자들에게 100% 비급여로 돈을 받았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 안전성은 누가 책임지나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을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가령 여의도성모병원 사례에서 논쟁이 됐던 약물 가운데 ‘카디옥산주’가 그렇다. 이 약은 500mg 한 병에 17만 원에 가까운 고가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임의비급여로 백혈병 환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이 약을 썼다. 2011년 유럽의약품청은 카디옥산주가 유방암 환자에게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백혈병환우회는 “당시 신의료기술이라고 의사들이 말한 치료법 때문에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배경택 보험급여과장은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의료 서비스가 남발되고 환자의 비용 부담이 커질 우려가 있다”며 “병원 실사를 강화해 과잉진료를 막는 것밖에 임의비급여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임의비급여 진료#신의료기술#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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