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O2/칼럼]<손택균의 카덴차>부정합(不整合)에 대하여: 심형래라는 사람, 영구라는 캐릭터, 그리고 '라스트 갓파더'라는 영화
더보기

[O2/칼럼]<손택균의 카덴차>부정합(不整合)에 대하여: 심형래라는 사람, 영구라는 캐릭터, 그리고 '라스트 갓파더'라는 영화

동아일보입력 2010-12-30 18:15수정 2011-02-07 18:44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코미디로는 대중음악이나 TV 드라마 같은 ‘한류’를 만들지 못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하지만 외국 관객의 웃음 코드를 건드리려면 한복 입은 더벅머리 영구의 모습으로는 곤란하다.” 심형래 씨는 “외국 스태프들이 배꼽 빠져라 웃으면서 ‘다음에는 카우보이 영구를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980년대에 초등학교(당시 명칭으로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에게 물어보자. '외계에서 온 우뢰매'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아느냐고. 아마 그 때 재임했던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인지 아느냐는 질문보다 정답률이 높을지도 모르겠다.

"심형래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열에 아홉 이상의 답변은 '에이, 당연히 알아요.(≒내가 바본 줄 알아요?)'일 것이다. '군사독재'라는 말을 '일제시대'라는 말만큼 생경해 할 나이의 어린이들도 심형래라는 이름은 잘 안다. 그 인지의 바탕에 있는 콘텐츠는 '우뢰매'나 '변방의 북소리'가 아니라 '디 워'이겠지만.

12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심형래 씨(52)를 만났다.
언론시사 전의 감독이나 배우 인터뷰는 되도록 피하는 편이지만,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으로서 '심형래를 만날 기회'는 뒤로 미루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인터넷도 홈페이지도 뉴스 댓글도 없었던, 그래서 '안티'라는 말도 없었던 시절. 신문에서 그를 중심으로 한 '유머 1번지' 등 인기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저속한 대사와 폭력적인 연기"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이따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주요기사

그러나 인터넷과 뉴스 댓글과 안티가 넘쳐나는 지금 같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영구'가 '왕비호'처럼 팬보다 많은 안티를 통해 대중의 인지도를 얻는 캐릭터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1980년대 인기 TV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 인기 코너 ‘영구야 영구야’의 한 장면. 드라마 ‘여로’의 주인공 ‘영구’를 가져온 코믹한 바보 캐릭터로 심형래는 당대 최고의 전국구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구는 1970년대 인기 드라마 '여로'의 주인공이었지만 심형래가 코미디 프로에서 영구의 코믹한 특징을 극대화해 써먹기 시작한 뒤로는 대중의 뇌리에 '코미디언 심형래의 또 다른 자아'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현세 만화의 주인공이 '오혜성'인 동시에 '설까치'인 것처럼, 영구는 심형래라는 이름에 파란색 저고리를 입혀서 조금 색다르게 표현한 동의어에 다름없었다.

바보스런 코미디 캐릭터는 영구 외에도 허다했다. 그보다 전에는 배삼룡이 있었고, 영구 뒤에는 이창훈의 '맹구'가 뒤를 이(으려 했)었다. 강호동이 '행님아', 서경석이 '울엄마'에서 연기한 바보들도 모두 영구를 프로토타입 삼아 파생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다른 어떤 바보도 영구만큼 범국민적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1989년 영구와 누렁이 강아지 한 마리가 투 톱 주연을 맡았던, '영구와 땡칠이'라는 매우 낯 뜨거운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인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품은 귀신들의 음모를 막으려는 영구와 강아지의 모험을 그린… 글로 설명하기 매우 난감한 내용과 퀄리티를 보유한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 대박도 그냥 대박이 아닌 초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처럼 박스오피스 집계 시스템이 온전히 갖춰진 때가 아니었지만, 전국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전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1991년까지 무려 4편의 '영구와 땡칠이'가 시리즈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흥행이 얼마나 짭짤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인기를 끌었다기보다는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
왜였을까. 심 씨는 "영구는 바보지만, 몰상식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늘 남에게 놀림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지만 남을 해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계속 손해를 봐도 결국에는 남을 도와 웃음을 함께 나누려 하는 캐릭터."

‘라스트 갓파더’의 한 장면. 누군가는 이 영화 속 영구를 보고 “심형래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라고 했다. 그럴까. ‘유머 1번지’ 속 영구가 배꼽 빠지게 웃겼던 것이 단지 씨네하우스에서 ‘모던 타임즈’가 개봉하기 전이었기 때문이었나 싶어서, 나는 정말 헷갈리고 초조했는데. 영구가 그나마 가느다란 지팡이를 손에 들지 않아준 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일면 수긍이 갔다. 매우 개인적인 견해지만 개그콘서트의 왕비호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은 그의 기본 전략이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무렵 TV에는 비웃음과 웃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뒤흔드는 야비한 개그는 없었다.

그래서 두근두근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그가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그의 손은 따뜻한 물로 적신 스펀지처럼 포근했다.
'야아. 그 영구가, 펭귄이, 우뢰매가, 어른이 된 내 앞에 서 있구나. 내가 영구랑 악수를 하고 있구나. 내가… 어른이 돼 있구나, 정말.'
대학 시절 우상처럼 흠모한 여배우를 인터뷰했던 2008년 어떤 날의 오후와는 다른 종류의, 야릇한 흥분과 감격이었다.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은 능력일까, 천성일까, 기술일까.
그는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무장해제 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생각에 대한 호의적 이해와 납득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래 전 '무릎팍도사'와 공익광고에서 이미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들었던 내용이었음에도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한국 코미디 영화의 열정적인 글로벌 시장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의 마음자세를 갖게 됐다.

"영화계 사람들로부터 받는 무시와 따돌림"에 대한 익히 알려진 이야기도 어쩐지 부끄럽게, 반성하는 마음으로 들었다. TV 시사토론 프로그램 주제로까지 다뤄졌던 '디 워'에 대한 관객으로서의 개인적 기억에도 기묘한 연민과 응원의 감정이 추가로 주입됐다. '라스트 갓파더' 예고편 영상의 깔끔한 질감을 극장에서 확인했을 때는 슬쩍 안도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심형래 씨는 “온 가족이 다같이 나들이 삼아서 극장에 나와 관람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라스트 갓파더’는 그런 영화일까. 춤추는 원더걸스 멤버들의 몸을 샅샅이 훑어 오르내리는 카메라의 시선은, 가족 중 노총각 삼촌을 위한 짤막한 서비스일 뿐인 것인지.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29일 개봉하자마자 서울 신촌 메가박스를 찾아가 영화를 봤다. 결론은?

슬펐다.

객석 절반쯤을 채우고 앉은 관객의 반응은 대개 긍정적이었다. 워낙 '어떤 영화'인지 잘 알고 들어온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리라. 편하게 웃으려 작정한 사람들이니 억지스럽고 어색한 설정, 허술한 만듦새 같은 것에는 관대했다. 상영시간 103분 내내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몇몇 장면에서는 크고 긴 폭소가 터졌다.

그걸로 좋은 걸까.

만듦새나 설정에 대해 불평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영구라는 캐릭터와 심형래라는 코미디언의 팬이었던 꼬마의 기억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나는, 관객으로서 어떤 기대를 이 영화에 걸고 있었던 걸까. 별반 관심이 가지 않았던 '심형래 코미디의 미국 진출작'은 인터뷰를 통해 꼭 눈여겨 챙겨 봐야 할 대상이 됐다. 그런 변화의 이유는 대화를 통해 '심형래 영구아트 대표'가 보여 준 단단하고 뜨거운 자기 영화에의 열정이었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말했다.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남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라고. 그와 비슷하다. 심형래 대표가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입 밖으로 내놓는 말은 조급한 변명이나 변호가 아니라 뿌듯한 자기 확신과 자랑이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디 워'가 유발한, 참말로 떠들썩했던 논란의 기억을 다시 돌이켜보자. 애국가와 태극기를 배경음악과 바탕화면으로 끌어들인 그 흥미로웠던 설전(舌戰)에 대해 이랬다저랬다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런 논란이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터뷰를 통해 느낀 영화감독 심형래의 열정은 뜨겁고 진솔했다. 자기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에 마주 던지는 설움 섞인 항변에도 일면 공감이 갔다. 하지만 심리적 마케팅 전략에 대한 의구심 역시 지울 수 없었다. 비판을 감내하고 이겨내며 더 좋아지는 것, 노력보다 결과가 중요한 것. 그 역시 예외는 아니지 않을까.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영화를 보지 않은 채로 처음 마주했던 내게 심 대표가 이야기한 이 영화 속의 주인공 '영구'는 "글로벌 코미디영화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본래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외국 관객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말쑥한 외양을 다듬은, 파란색 저고리를 벗고 머리를 단정히 빗은" 개량형 영구였다.

하지만 1시간 40분 내내 내가 본 것은, 대부를 패러디한 코미디 속에서 허우적대며 채플린 흉내를 내고 있는, 영구였다.
그래서 안쓰럽고 서글펐다.
달리 이 영화에 대해 긴 말을 구구절절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유머 1번지' 속 영구가 심형래 대표의 말처럼 "괴롭힘을 당하지만 남을 해치려 들지는 않는" 착한 캐릭터였던가. 그거 혹시, '모던 타임즈'의 떠돌이 찰리에 더 적합한 설명 아닐까. 한복을 벗은 영구가 몸에 입고 신은 것은 소매 짧은 양복과 앞코 불룩 솟은 헐렁하고 낡은 구두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 낸시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 '모던 타임즈'의 라스트 신 실루엣을 떠올리지 않는 서구 관객, 몇이나 될까.

영구는 정말, 그렇게 원형(原形)을 송두리째 버리고 채플린 흉내를 내야만 글로벌 시장의 경쟁에 한몫 끼어들 수 있는, 어설픈 캐릭터에 불과했을까. 우뢰매와 변방의 북소리에 열광했던, 영구와 땡칠이의 개그에 깔깔 웃으며 고사리 손으로 박수 치던 꼬마들의 기억은, 그렇게나 근본 없는 대상을 향한, 어리석은 찬사일 뿐이었을까.

▶ 심형래 “그냥 영구답게 부딪치니 외국인들 웃음 빵빵 터져”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 오·감·만·족 O₂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news.donga.com/O2)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