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대머리집’ 외상장부엔 누가?

  • 입력 2009년 7월 29일 02시 59분


28일 공개된 서울 종로구 사직동 ‘대머리집’의 외상장부. 장부 속엔 71개 기관 800여 명의 외상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28일 공개된 서울 종로구 사직동 ‘대머리집’의 외상장부. 장부 속엔 71개 기관 800여 명의 외상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1960년대 언론인-교수 등 사랑방
기관별 800여명 명단 빼곡히 적혀

“1970년 당시 서울 종합일간지 사회면 편집기자들은 친목 도모, 편집권 옹호, 정보교환의 취지를 내걸고 매월 한 번씩 만났다. 장소는 종로구 사직동 대머리집.(중략) 퇴근 후 으레 찾는 대머리집에는 항상 동아일보 권도홍 부장도 ‘꾼’들을 이끌고 합류했다.” (천상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클럽 고문, ‘그때 그 시절 편집국’ 중)

40여 년 전 ‘대머리집’은 항상 새벽녘까지 북적거렸다. 1910년경 문을 연 이 식당은 막걸리와 소주, 생선찌개를 파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곳. 하지만 저렴한 가격,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 그리고 손님과 주인 사이에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외상 거래 덕에 당시 기자부터 공무원, 대학교수, 문인 등 사회 명사들이 매일같이 찾는 단골 사랑방이자 명소였다.

1960년대 광화문 술집의 풍속도를 알 수 있는 대머리집 외상장부가 발견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950년대 말부터 1962년 사이 대머리집 주인이 외상 명세와 수금을 위해 작성한 장부 3권을 확보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장부엔 펜이나 연필로 쓴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다. 동아일보, 고려대, 서울시청 등 71개 기관별로 적힌 800여 명의 이름이다. 권도홍 손세일 전 동아일보 기자를 비롯해 조용만 고려대 명예교수, 작곡가 장일남 씨, 영화평론가 정영일 씨, 탤런트 최불암 이순재 오지명 씨 등. 이름 대신 ‘대합조개 좋아하는 사람’ ‘필운동 건달’ 등 인상착의나 좋아하는 메뉴를 대신 기재한 경우도 있다.

소속기관별로 이름을 분류한 이 장부에는 사람별로 외상 금액과 갚았는지가 적혀 있다. 술값은 대부분 당시 금액으로 100∼300원. 회식을 한 듯 1000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는 자장면 한 그릇이 15원. 외상값은 할부로도 갚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뚜렷한 직장이 없고 미수금이 있더라도 외상이 가능했다.

1978년 10월 문을 닫은 대머리집의 외상장부는 당시 단골손님 중 한 명이었던 극작가 조성현 씨가 주인 이종근 씨에게서 건네받아 지금까지 보관해 왔다. 이 장부는 3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광화문 연가: 시계를 되돌리다’전에서 당시 모습대로 재현된 대머리집 식당과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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