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당시 서울 종합일간지 사회면 편집기자들은 친목 도모, 편집권 옹호, 정보교환의 취지를 내걸고 매월 한 번씩 만났다. 장소는 종로구 사직동 대머리집.(중략) 퇴근 후 으레 찾는 대머리집에는 항상 동아일보 권도홍 부장도 ‘꾼’들을 이끌고 합류했다.” (천상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클럽 고문, ‘그때 그 시절 편집국’ 중)
40여 년 전 ‘대머리집’은 항상 새벽녘까지 북적거렸다. 1910년경 문을 연 이 식당은 막걸리와 소주, 생선찌개를 파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곳. 하지만 저렴한 가격,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 그리고 손님과 주인 사이에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외상 거래 덕에 당시 기자부터 공무원, 대학교수, 문인 등 사회 명사들이 매일같이 찾는 단골 사랑방이자 명소였다.
1960년대 광화문 술집의 풍속도를 알 수 있는 대머리집 외상장부가 발견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950년대 말부터 1962년 사이 대머리집 주인이 외상 명세와 수금을 위해 작성한 장부 3권을 확보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장부엔 펜이나 연필로 쓴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다. 동아일보, 고려대, 서울시청 등 71개 기관별로 적힌 800여 명의 이름이다. 권도홍 손세일 전 동아일보 기자를 비롯해 조용만 고려대 명예교수, 작곡가 장일남 씨, 영화평론가 정영일 씨, 탤런트 최불암 이순재 오지명 씨 등. 이름 대신 ‘대합조개 좋아하는 사람’ ‘필운동 건달’ 등 인상착의나 좋아하는 메뉴를 대신 기재한 경우도 있다.
소속기관별로 이름을 분류한 이 장부에는 사람별로 외상 금액과 갚았는지가 적혀 있다. 술값은 대부분 당시 금액으로 100∼300원. 회식을 한 듯 1000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는 자장면 한 그릇이 15원. 외상값은 할부로도 갚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뚜렷한 직장이 없고 미수금이 있더라도 외상이 가능했다.
1978년 10월 문을 닫은 대머리집의 외상장부는 당시 단골손님 중 한 명이었던 극작가 조성현 씨가 주인 이종근 씨에게서 건네받아 지금까지 보관해 왔다. 이 장부는 3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광화문 연가: 시계를 되돌리다’전에서 당시 모습대로 재현된 대머리집 식당과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