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46>

  • 입력 2009년 7월 28일 14시 09분


경기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상대를 향해 돌진한 두 로봇은,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싸우는 야생 고릴라나 곰처럼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면으로 점프한 무사시와 글라슈트는 계속 가슴으로 부딪히며 굉음을 쏟아냈다. 신경을 건드리는 금속성 굉음은 상대를 향한 저주의 울부짖음이었다.

글라슈트의 몸놀림은 4강전보다 한층 자연스럽고 파워풀했다. 이번에도 최볼테르는 글라슈트의 첫 동작에 당황했다. 글라슈트의 중앙제어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도파민 시스템이 지닌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모사하였다. 공격을 받으면 고통을 느끼고 상대방을 가격하면 쾌락을 느끼게 설정함으로써, 스스로 폭력의 쾌락을 좇아 학습하는 알고리듬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그러나 볼테르는 글라슈트가 이렇듯 빨리 학습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글라슈트의 경기 초반 움직임은 대부분 서툴고 빈틈이 많았지만 결승전만은 달랐다. 무사시에게 밀리지 않고 높이 더 높이 점프하여 세게 더 세게 달려들었다. 단 한 뼘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다짐한 로마의 검투사처럼.

가슴을 부딪치며 힘겨루기를 하는 두 로봇의 행동에서 '기계문명의 야성'이 묻어났다.

"최상급 격투 기술을 지닌 로봇들이 초반부터 힘겨루기를 하네요. 예측 못한 장관입니다. 공중 점프를 한 후, 가슴으로 부딪히고 두 주먹으로 상대의 허리와 옆구리를 가격하면서 '누가누가 먼저 쓰러지나' 오기를 부리는군요."

"미르코 크로캅 씨, 로봇전문가들은 누구의 우승을 점쳤지요?"

"네, 사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로봇전문가들은 6:4로 무사시의 우승을, 또 도박사들도 무사시의 우승을 75% 정도로 예측하고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글라슈트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매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도박사들의 예측을 멋지게 비웃지 않았습니까? 과연 오늘은 도박사들의 예측이 맞을지 아니면 빗나갈지 정말 궁금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무사시가 자신의 긴 팔로 글라슈트의 다리를 잡아당겨 쓰러뜨렸습니다. 목을 잡고 암바를 하는 건가요? 저러다가 정말 목돌리기로 연결하는 건 아닌가요!"

"글라슈트, 목을 풀고 빨리 일어나! 하체로 무게 중심을 옮겨!"

민선이 글라슈트에게 소리쳤다.

"순간적으로 팔 조르기를 풀고, 다시 일어서는 글라슈트. 이번엔 글라슈트가 무사시의 등을 발차기로 공격합니다."

"끄떡도 하지 않는 무사시. 곧바로 뒤돌더니 '파워 옆차기'로 글라슈트를 공격하는데요. 팔꿈치에 힘을 실어 가슴을 공격하는 무사시. 연속 공격을 당한 글라슈트는 균형을 못 잡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무사시가 니킥으로 다시 글라슈트의 허벅지를 때립니다. 기록에 따르면, 글라슈트는 지금까지 허벅지 공격 허용빈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무려 56%나 되는데요. 아마도 무사시가 그걸 노리고 허벅지를 집중 공격하는 것 같아요."

"글라슈트의 팔이 짧고, 다리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느린 게 원인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코브라 찍기! 다시 코브라 찍기! 다시 코브라 찍기! 무사시가 점프한 후 팔꿈치로 글라슈트의 정수리를 가격하고 있습니다. 거의 2미터 이상 뛰어오르고 있는데요. 무사시의 점프력이 대단합니다."

"네, 글라슈트, 충격이 상당히 심해 보이는데요. 비틀거리면서 다운되었습니다. 심판이 글라슈트에게 일어날 기회를 주면서 다시 경기를 속개시킵니다."

"경기가 다시 시작되자마자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무사시.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나서 연속해서 뻗은 주먹의 팔꿈치로 한 번 더 가격을 하는데요. 대단한 기술입니다. 착지하자마자 옆차기! 빠른 연속 공격기술입니다."

"앗, 저건 뭔가요? 무사시의 발이 갑자기 길어지면서 글라슈트를 감싸며 쓰러뜨리는데요. 함께 쓰러지며 글라슈트의 목을 감싸 안은 무사시. 저건 목돌리기 자세 아닌가요, 크로캅씨?"

"네, 맞습니다. 무사시가 정말로 목돌리기를 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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