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대담낙필’ 힘찬 붓

  • 입력 2009년 7월 24일 03시 00분


그야말로 ‘말씀대로’는 작가의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성경의 많은 구절을 서예작품으로 남겼고 성경전서와 새문안교회 등의 표제를 썼다. 그의 글씨를 본떠 제작된 컴퓨터의 한글 폰트 덕분에 그의 이름은 몰라도 글씨는 친숙하다. 남성적이면서 힘찬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는 듯한 서체는 ‘꽉 짜인 느낌, 율동적 느낌’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는 바로 서예가 원곡 김기승(1909∼2000).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세기 한국서예 거장의 예술세계를 돌아보는 ‘말씀대로’전이 8월 16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동국 수석 큐레이터는 “일부에선 평생 같은 글씨만 썼다고 비판하지만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 전시는 역사와 정신 등 다섯 주제 아래 작가의 전모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전시는 서예고전을 두루 섭렵한 뒤 고유한 서체를 만들기까지 1960년대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전형’과 ‘개성’을 바탕으로 완성된 원곡체의 특징은 ‘대담낙필’. 대담하게 붓을 던져 떨어뜨린 듯, 굵고 가는 점획에 크고 작은 글자가 극대화된 강약대비가 두드러진다. 전서 예서 행서 등을 섞어쓰는 각체혼융과 한글에 한자필법을 도입하는 등 실험을 거쳐 중후한 서체를 완성한 원곡. 같은 시기 글자를 이미지화한 ‘묵영’ 작업을 시도해 ‘서예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90평생, 35회 개인전을 열었던 원곡의 ‘거대한 생애’는 전시장에서 네 단계로 압축된다.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뒤 상하이의 대학에 들어가 초서작가 위유런(于右任)을 만나고 흥사단에서 도산 안창호의 가르침을 받았던 ‘자습기’. 스승인 소전 손재형을 사사하며 국전을 휩쓸던 ‘학서기’, 60년대의 ‘실험기’, 예수를 중심으로 성현의 말씀을 글로 남긴 ‘완성기’ 등.

전시에서는 서체 감상은 물론이지만 글의 내용까지 꼼꼼히 챙겨볼 것을 권하고 싶다. 로마서의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와 1925년 1월 동아일보에 실렸던 도산의 ‘당신은 주인입니까’ 등 주옥같은 글이 수두룩하기 때문. 그의 전시를 찾았던 박수근 김환기 등 당대 인사의 친필을 감상하는 것은 덤이다. 3000∼5000원. 02-580-1660, www.sac.or.kr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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