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훔쳐라… 나폴레옹 - 피카소도 그랬다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3분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컬럼비아대의 윌리엄 더건 교수가 8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EMBA 과정 학생들에게 전략적 직관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KAIST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컬럼비아대의 윌리엄 더건 교수가 8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EMBA 과정 학생들에게 전략적 직관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KAIST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EMBA 과정
뉴욕 현지수업 ‘전략적 직관’ 참관해보니

8일(현지 시간) 오전 7시 반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브로드웨이 50번가 지하철역. 한국인 30여 명이 1번 라인 지하철에 올랐다. 업타운 방향으로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아이비리그 명문 중 하나인 컬럼비아대. 이들은 곧장 아름다운 캠퍼스를 가로질러 정문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유리스홀로 향했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을 배출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이다.

3층 강의실에서는 키가 190cm는 족히 돼 보이는 한 교수가 강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8시 반. “굿 모닝”이라는 그의 인사로 수업이 시작됐다. 학생들은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

이 학생들은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EMBA 과정 1년차, 강연자는 ‘전략적 직관’의 창시자인 윌리엄 더건 교수. KAIST 측은 지난해까지 EMBA 1년차 필드 트립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진행했지만 올해는 컬럼비아대를 선택했다. 본보도 더건 교수의 ‘명강의’를 듣기 위한 필드 트립에 동행했다.

○ ‘전략’이라는 단어를 태동시킨 나폴레옹

더건 교수는 딱딱한 숫자나 경영학 이론을 거의 들먹이지 않았다. 그 대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파블로 피카소, 헨리 5세 등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갔다.

1793년 9월 영국군은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툴롱을 점령했다. 군사적 요충지를 뺏긴 프랑스는 비상이 걸렸다. 당시 부사령관으로 임명된 나폴레옹의 나이는 겨우 24세. 그가 내놓은 대책은 툴롱 인근의 작은 요새 레귀예트를 점령해야 한다는 것. 이는 △미국 독립전쟁의 요크타운 전투(1781년) 이후 영국 육군은 해군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 요새를 되찾기 위해 도시 주위의 작은 요새들을 차지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썼다(1429년) △이동성이 뛰어난 경량포가 10년 전 개발됐다는 점 등에 착안한 결정이었다.

나폴레옹의 판단은 훌륭하게 적중했다. 프랑스군이 레귀예트 요새를 차지하자 영국군은 스스로 툴롱을 포기한다. 이후 나폴레옹은 승승장구한 끝에 황제까지 됐다. 무서운 속도로 영토를 확장한 나폴레옹은 영국, 독일 등 주변국들에는 두려운 존재인 동시에 철저한 연구 대상이었다. 1810년 영어에 ‘전략’이라는 단어가 처음 생겨난 것도 나폴레옹의 영향이었다.

더건 교수는 ‘전쟁론’(1832년)의 저자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인용해 “나폴레옹의 성공 전략은 냉철함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례에서 얻은 조각들을 완전히 새롭게 끼워 맞춰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피카소의 화풍도 훔친 아이디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입체파 화가로 칭송받는 피카소. 그의 비현실적이고 독창적인 화풍은 어디서 온 것일까. 더건 교수는 “피카소 역시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창조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그만의 화풍을 완성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먼저 보여준 피카소의 ‘망토를 입은 자화상’(1901년)은 인상주의 작품이지만 멀리서 보면 사실주의 작품처럼 보인다. 뒤이어 화면에 나타난 ‘자화상’(1907년)은 흘깃 보더라도 “아, 피카소구나”를 외칠 정도로 그만의 화풍을 담고 있다.

피카소의 아이디어 도용이란? 새로운 스타일을 항상 갈구하던 피카소는 1906년 어느 날 프랑스의 앙리 마티스와 마주하게 된다. 마티스는 현대 미술에 한 획을 그은 ‘인생의 행복’을 그린 인물. 피카소와 만나던 날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상을 품에 안고 있었다. 피카소는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집에 돌아간 피카소는 그날 밤부터 마티스의 화풍에 아프리카 조각상을 결합한 독특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불후의 명작 ‘아비뇽의 처녀들’이 탄생했다.

○ 최고의 아이디어는 창조가 아닌 조합

더건 교수의 수업에는 나폴레옹와 피카소 외에 영국의 헨리 5세도 등장한다. 헨리 5세는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현격히 적은 군인과 병기로 프랑스군에 대승을 거둔다. 영국군의 승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땅에 박아 둔 긴 창(pike). 헨리 5세는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윌리스(할리우드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실제 주인공)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승리를 거둘 때 썼던 전략을 따와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더건 교수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마하트마 간디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렸고, 간디는 미국의 여성 투표권 쟁취 운동을 벌인 앨리스 폴을 따라 비폭력 운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를 쓴 획기적 아이디어에 새로운 사실들은 없다. 다만 새로운 조합이 있었을 뿐이다”며 “이는 경영 리더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역사 또는 주변에 산재한 무수히 많은 사실이 불황을 탈출하고 신사업을 개척하는 획기적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는 의미다. 더건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 중 한 명인 채상윤 제일모직 부장은 삼성전자를 명실상부한 세계 1위 TV업체로 만든 ‘보르도TV’도 이런 사례라며 맞장구를 쳤다. 채 부장은 “보르도TV의 고부가가치화를 견인한 내(耐)스크래치 외장 소재는 TV가 아니라 냉장고 등 백색가전의 소재를 다룬 경험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뉴욕=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브레인스토밍은 최악의 방법이다”▼

■ 강의 맡은 윌리엄 더건 교수

갭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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