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와타나베 부인 신드롬’ 막는다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5분


외환 마진거래 90%가 손실
당국, 증거금률 2%→5%로

직장인 A 씨는 소액을 들이고도 짧은 기간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얘기에 솔깃해 2000달러(약 250만 원)를 ‘FX(Foreign Exchange)마진거래’에 투자했다. A 씨는 달러화가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데 베팅했다. 그러나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자 A 씨는 반대매매를 당해 대박은커녕 며칠 만에 투자금의 절반을 잃었다. 그래도 대박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A 씨는 FX마진거래를 계속하고 있지만 지식 부족으로 손실만 늘어나고 있다. A 씨는 금융당국이 소개한 FX마진거래 투자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FX마진거래의 투기적 성향이 짙어지자 9월부터 증거금률을 기존 2%에서 5%로 높이는 등 단속과 감독을 강화한다고 16일 밝혔다. A 씨처럼 대박을 기대하고 투자에 나섰다가 대규모 손실을 낸 개인투자자가 급증하면서 이른바 ‘한국판 와타나베 부인’ 신드롬을 미리 차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와타나베 부인’은 저금리인 일본을 벗어나 해외로 투자기회를 찾아 나선 일본의 중상층 주부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이 즐겨 사용했던 투자방식이 바로 FX마진거래였다.

FX마진거래는 적은 증거금으로 최대 50배까지 투자할 수 있어 소액으로 대박을 노리는 개인투자자들에게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FX마진거래 계약금액은 2005년 1조2822억 원에서 올해 5월 말 현재 361조4604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FX마진거래는 환율 움직임을 잘못 예측하면 ‘쪽박’을 찰 가능성이 큰 고위험 파생상품이다. 투자하는 통화의 상대적 환율 변동이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1∼2%만 바뀌어도 투자자금 대부분이 손실 나는 구조로 돼 있어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전체 FX마진거래 계좌(5958계좌) 중 손실 난 계좌가 90%(5386계좌)에 이르고 전체 계좌의 70%는 거래를 시작한 지 15일 이내에 손실 확대로 반대매매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FX마진거래로 인한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은 2007년 118억 원에서 올해 5월 말 449억 원으로 급증했다.

금융당국이 9월부터 증거금률을 5%로 올리면 레버리지는 50배에서 20배로 줄어든다. 예를 들어 현행 2% 증거금률 체제에서는 200달러의 원금으로 최고 1만 달러까지 거래할 수 있지만 증거금률이 5%로 오르면 최고 거래 규모는 4000달러로 축소된다. 또 금융당국은 선물회사에 대해 연 1회 이상 검사를 실시하고 불법거래 조직과 연계된 영업행위를 강력히 제재하기로 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FX 마진거래:

일정액의 증거금을 국내 선물회사나 중개업체에 맡겨두고 특정 해외 통화의 변동성을 예측해 두 종류의 통화를 동시에 사고파는 방식의 외환선물거래. 예를 들어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달러를 사는 동시에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 일본 엔을 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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