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라인 책임론’ 미스터리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천성관 청문회 제기된 의혹
검증 과정 확인 가능한 것들
덮었을까… 검증 안했을까…
비선人事 여부 추측 무성

인사검증 책임을 맡고 있는 정동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15일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청와대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발탁과 관련한 책임 논란이 빨리 수습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천 후보자 인선에 대한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검찰총장 인선이 워낙 은밀하게 이뤄진 탓에 민정라인이 추천과 검증 과정에서 배제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 수석 혼자 옷을 벗고 말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누가 천 후보자를 추천했는지 먼저 밝히고 책임을 물은 뒤 시스템을 뜯어고치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며 “정 수석만 자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천 후보자 발탁 당시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것은 역대 정권에서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말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비선라인이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동관 대변인은 “비선인사 논란이 있는데 그야말로 추측일 뿐”이라며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인사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일부에선 대통령 사위가 소개했다고까지 했는데 낭설이다. 명예훼손으로 소송할 수도 있는 문제”라며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천 후보자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갖가지 의혹은 ‘민정 배제론’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예컨대 △사업가 박모 씨로부터 15억5000만 원을 차입한 부분이라든가 △천 후보자 동생의 배임 혐의 불구속 기소 △고급 승용차 리스 경위 등은 정상적으로 민정에서 검증을 했다면 쉽게 포착할 수 있었던 문제점들이기 때문이다. 검증 과정에서 이런 부분이 걸러졌다면 천 후보자를 추천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도덕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천 후보자가 까다로운 인사 검증을 통과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 다른 말 못할 사정이 있어 검증에서 문제가 됐지만 덮었을 가능성과 아예 검증조차 못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후보군 발굴에서부터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하기까지 민정라인만 가동되는 게 아니라 실세로 분류되는 여러 사람이 개입한다”며 “민정팀이 다양한 의견을 접수해야 하지만 때로는 일방적인 견해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천 후보자와 관련해선 발탁 초기부터 검찰 등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검증을 통과했다는 게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 내에선 “검증을 맡고 있는 20여 명의 공직기강팀이 후보자 면면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실정법에 막혀 금전 문제나 도덕적 하자를 정확히 알아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는 하소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천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제대로 방어도 못할 정도의 중대한 도덕적 결함을 그냥 지나친 데 대해선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민정수석실이 역량의 한계 때문에 검증을 제대로 못한 것이라면 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천 후보자를 추천한 인사가 누구인지는 정치권에서 추측만 무성할 뿐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이번 파문으로 인해 이 대통령이 당초 구상하던 청와대와 내각의 인사 구도는 엉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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