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미국 워싱턴 상원의원회관인 하트빌딩 216호. 미국 사법사상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이 될 것이 유력한 소니아 소토마요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속개됐다. 정열을 상징하는 듯한 빨간색 재킷을 입었지만 목소리는 시종일관 냉철하고 절제된 어조였다. 평소 “다혈질이고 다소 감정의 기복이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했다. 뉴욕타임스는 “소토마요르 후보자는 단 한 차례도 열 받아 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며 “가능한 한 스스로를 ‘지루하고 따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만들기 위한 고통을 감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쓰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는 7시간 동안 이어졌다.
○ 오바마를 부정하다?
소토마요르 후보자는 “오로지 법률에 근거한 판결만이 판사의 본분”이라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자신을 향한 비판론자들의 핵심 주장이 “인종적(히스패닉계), 성적(여성) 기준에 영향을 받는 감성적 판단이 법률적 판단보다 앞설 수 있는 위험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한 발언이었다. 그는 “판사의 감정은 사건의 결론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며 “판사는 법률을 사실에 적용할 뿐이기 때문에 감정을 사실에 이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자신을 지명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편 판사론과도 선을 그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7월 17일 대선 유세 당시 대법관 지명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대법원 결정의 95%는 법률상 이견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나머지 5%”라며 “그 5%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법관의 본심이 어떤지, 그들이 그리는 미국의 비전이 어떤 것인지이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10대 미혼모, 가난한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 동성애자, 장애인, 노령자를 이해하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대법관 선출 기준이라며 “중요한 것은 (법 그 자체보다) ‘법관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토마요르 후보자는 공화당 존 카일 의원이 “오바마 대통령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나는 판결을 내릴 때 대통령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접근하지 않는다”며 “법은 법관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법은 의회가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법관이라는 직업은 법을 적용하는 일이며, 판결을 내리게 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바로 법”이라고 밝혔다.
○ 문제 발언 해명
소토마요르 후보자는 역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던 “총명한 라틴계 여성이 백인 남성보다 더 나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2001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강연 발언에 대해서는 “단어 선택이 부적절했다”며 잘못을 시인하는 듯한 유감 표명을 했다. 이어 “당시 강연은 소수인종 출신 법대생들에게 용기를 고취시키자는 취지에서 한 것”이라고 해명한 뒤 “모호하지 않으면서 솔직하게 그들과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특정 민족, 인종, 성이 건전한 판결을 내리는 데 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힘주어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