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떠오르는 새 별]피아니스트 김규연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실수를 발전의 밑천 삼는 건반위 오뚝이

5월 29일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준결선. 바다 색깔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 김규연 씨(22)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다 악보 두 페이지 분량을 건너뛰었다. 그 순간 ‘눈앞에 별이 번쩍번쩍’ 하는 느낌이었다. 연주시간은 10여 분이나 남았는데….

1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문호아트홀에서 그를 만났다.

“울진 않았어요. 지나가다 새똥 맞은 기분?(웃음) 선율이 비슷해 조금만 잘못 치면 뒤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지’ 계속 생각했거든요. 건반을 잘못 누른 순간 알았죠. 화나고 당황하다 나중에는 마음이 편안해져 내 스타일대로 다 쏟아 붓고 연주를 마쳤어요.”

결선 진출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더블린 국제 피아노 콩쿠르 한국인 최초 2위(2006년), 제네바 콩쿠르 최연소 특별상(2002년), 지나 바카우어 영 아티스트 콩쿠르 1위(2001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열심히 달려가되 구체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으려고요. 목표가 너무 분명하면 못 이룰 때 패배자라고 할 수밖에 없잖아요. 실패로 좌절하기보다는 매일매일 발전하는 일,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 두려움 극복 위해 ‘불운의 연주곡’ 재도전

16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여는 독주회 레퍼토리에도 ‘전람회의 그림’이 들어있다. 그는 “곡을 바꿀 수 있었지만 실수한 채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고 또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트라우마도 극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피아노와 잠시 거리를 두고 싶을 때 홀로 영화관을 찾는다. 영화와 단둘이 마주한 그 순간을 그는 ‘데이트’라고 표현했다. 스크린 속 영화배우에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모습을 비춰본다. “연기자가 연기할 땐 원래의 모습, 현재의 상태와 상관없이 주어진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잖아요.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도 그래요. 심리상태나 처한 상황을 분리시킬 수 있어야 해요.”

그는 인상 깊은 영화로 ‘굿바이 칠드런’을 꼽았다. “전쟁 통에 친구를 잃은 소년이 지니게 된 마음의 상처, 우정을 그린 영화예요. 감정을 절제할 때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소년의 담담한 표정이 더 슬펐죠. 영화 볼 땐 눈물이 안 났는데 지금 떠올리면 가슴이 찡해요.”

그는 쇼팽의 ‘프렐류드 3번’은 얇은 티슈가 바람에 팔랑거리는 모습이,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2번 2악장’은 시체와 피가 뒤범벅된 전쟁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에게 피아노는 ‘소리 나는 커다란 가구’였다. 꼬마는 피아니스트 엄마(이경숙 전 연세대 음대 학장)가 ‘도’를 가르쳐주면 일부러 ‘미’나 ‘라’ 건반을 짚었다. 동네 피아노학원을 놀면서 다녔고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를 치면 칭찬받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음악이 좋다는 걸 알게 됐다.

○ 연주자는 캐릭터 집중하는 연기자와 닮아

“예전엔 엄마가 가르쳐주면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라고 그랬어요. 요즘은 ‘엄마, 피아노 치는 거 한번만 들어줘’라고 해요. ‘거기 좀 이상하지 않니?’ 지나가듯 해주시는 말씀이 정말 도움 돼요. 엄마, 딸 이상의 연대감을 느껴요. 엄마의 명성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전 엄마에게서 매일매일 작은 것을 배워요. 딸이 어떻게 엄마에게 영향을 안 받을 수 있겠어요?(웃음)”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조범철 인턴기자 고려대 언론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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