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벤치스토리] 연경흠 ‘스타보다 열정맨이 좋아’

  • 입력 2009년 7월 8일 08시 18분


오전 6시부터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고 나면, 손에는 5만3000원이 쥐어졌다. 집에 돌아가 코를 풀면, 종일 쌓인 먼지가 새까맣게 묻어나왔다. 손바닥에는 굳은 살, 발바닥에는 물집을 달고 살던 나날들. 그러나 그 시절을 돌이키는 연경흠(26·한화)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주변에서는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말렸어요. 하지만 그 때 돈의 소중함을 알았어요. 열심히 산다는 것의 보람도 깨달았고요.” 대학시절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택했던 길은 ‘막노동’이었다. 방학마다 어김없이 찾아갔던 공사판에서, 그는 그렇게 인생을 배웠다.

가고 싶어서 갔던 대학은 아니었다. 청주 기계공고를 졸업하던 2002년 그의 지명 순번은 2차 12번이었다. 전체 선수 중에서는 무려 90번째. 지난해 한화의 2차지명이 5번에서 끝났으니,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지명조차 못 받을 뻔했다. 그나마 “계약금 한푼 못 받아도 좋으니 바로 입단하고 싶다”고 졸랐다가 “자리가 없다. 대학 갔다 오라”는 대답만 들었다.

하지만 헛된 4년은 아니었다. 연경흠의 열정을 높이 산 한화는 졸업반 타율이 1할대였던 그에게 계약금 8000만원을 안겼다. “제가 사실 재능은 정말 없거든요. 연고지역선수라 운 좋게 지명된 건데…. 열심히 산 덕분인가 봐요.” 그가 쑥스럽게 웃었다.

○유명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길

늘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그였다. 첫 전지훈련부터 그랬다. 너무 열심히 뛰어다닌 탓에 준비해간 운동화가 귀국하기도 전에 다 닳아 없어지곤 했다.

“TV와 컴퓨터 앞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시작한 일본어는 이제 재일교포 출신 강병수의 통역을 자임할 정도로 능숙해졌다.

은퇴 후 생계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노후 대비’를 해놓을 생각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간에 소개로 만난 여자친구와도 첫 눈에 반해 열심히 연애하고 있다. 하루빨리 안정을 찾기 위해 이번 시즌이 끝난 후에는 군대도 다녀올 계획이다.

물론 그가 가장 열심히 하는 건, 야구다. “열심히 한다고 모든 게 잘 풀리는 건 아니다”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지만, “더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체감해왔다.

무엇보다 그는, 훗날 자신의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할 생각이다. “아빠는 유명한 야구선수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한 선수였단다”라고. 그리고 아이가 그 사실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 해준다면, 지금처럼 늘 웃으며 살 수 있겠다고 말이다.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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