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지배하는 ‘김일성 그림자’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7분


■ 내일 金 주석 15주기

경제난 극복-3대세습 위해 ‘김주석 향수’ 적극 활용… 北전역 잇단 추모행사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4일 평안남도 남포시에 있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시찰)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북한은 2009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강선(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옛 이름)의 노동계급’과 ‘혁명적 대고조’를 강조했다. 이들 구호는 김일성 주석이 52년 전인 1956년 12월 외친 것이었다. 그러고 얼마 뒤 북한은 주민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150일 전투’를 시작했다.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2012년)를 3년 앞두고 주민들을 노력 동원에 내몰면서 다시 김 주석의 ‘말씀’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 주석이 사망한 지 8일로 꼭 15년이 되지만 북한의 사회 전반에는 김 주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김 위원장은 15년 동안 아버지를 넘어서지 못한 채 대내외적으로 중첩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를 활용해왔다. 특히 작금의 상황은 더더욱 김 주석의 그늘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김 주석 통한 선전선동 강화

김 위원장은 150일 전투를 시작하기 전인 1월 평안남도 남포시에 있는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를 방문했고 3월 황해북도 황해제철기업소를 방문했다. 모두 김 주석이 1950년대 이후 ‘자립적 민족경제’를 일으킬 당시 현지지도를 했던 곳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지도부는 김 주석이 이뤘던 경제적 부흥의 경험을 주민들에게 일깨우고 다시 한 번 뛸 것을 촉구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중노력동원 방식의 경제운용은 1970년대 초까지 북한 경제의 외연적 성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경제를 왜곡시켜 북한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김 위원장이 10년 전인 1999년 김 주석의 ‘천리마 운동’을 다시 들고 나온 것도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주석 사망 이후 덮친 ‘고난의 행군’ 경제난은 북한 경제에 깊은 골을 남겼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북한 경제가 3.7% 성장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북한 경제는 여전히 1980년대 후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채 총체적 대외 고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김 위원장의 3남 정운에게 ‘3대 세습’을 시도하면서 김 주석이 다시 북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평양을 방문한 외교관들은 북한 거리에 김 주석을 찬양하는 홍보물이 부쩍 늘어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사상 만세’ 등 찬양 표어가 여러 곳에 걸렸다. 북한 매체들도 연일 ‘백두산 혈통’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24일 “백두산에서 개척된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 완성해 나가려는 의지”를 강조하며 김 주석 손자의 세습을 정당화했다.

잇따르는 추모행사

북한 주민들의 일상에도 김 주석은 살아있다.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한 북한 주민은 6일 “김 주석의 흔적은 북한 곳곳에 조금도 퇴색되지 않고 남아 있다”며 주민들이 소속 단위별로 매주 의무적으로 하는 ‘생활총화’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김 주석 생전에도 생활총화의 핵심인 자기비판을 하기 전에 형식적으로 김 주석 또는 김 위원장의 ‘말씀’을 먼저 인용해야 했고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 주민의 마음속에는 김 주석과 그의 생전 ‘좋은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는 최근 복잡한 대내외 정세 속에서 15주기 추모 기간을 대내 단속에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 전역에서 추모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일 김 주석 15주기를 맞아 미술전시회가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개막됐다고 전했다. 또 이 통신은 같은 날 황해남도 연안군에서 농업근로자들의 회고모임이 열렸다고 전했다. 올해는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주년(5주년, 10주년 등 꺾어지는 해)’이어서 8일을 전후해 다양한 추모행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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