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누가 찍기를 운이라 하는가!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6분


《1학기 기말고사가 한창인 중고교 교실.

가채점을 마친 학생들 사이에선 희비가 엇갈린다.

“와! 수학 3번 문제 찍었는데 맞았다.”

“어휴, 난 찍은 문제는 다 틀렸어.”

그런데 참 공교롭다. 알쏭달쏭한 문제를 똑같이 ‘찍었’는데, 왜 1등인 학생은 정답만 찍고 중하위권 학생은 오답만 골라 찍는 걸까.

최상위권 학생들은 “찍기도 실력”이라고 말한다.

‘찍기’는 ‘운’이 아니라 ‘논리’요 ‘과학’이라는 것이다.

최상위권은 모르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무조건 찍질 않는다.

대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선택지들을 추려내고 또 추려내 가며 정답에 접근한다.

‘모르면 무조건 3번’ 식은 중하위권의 얘기일 뿐.

심지어 전교 1등은 단어나 숫자 하나만 쓰는 단답식 문제도 ‘찍어서’ 맞히는 기적을 행한다.

최상위권의 ‘똑똑한 찍기’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있을까?

그 비결을 살펴보노라면, 공부한 내용을 체화(體化)하고 이를 실전(시험)에서 유연하게 적용하는 최상위권의 체계화된 프로세스를 발견하게 된다.》

콕콕 잘도 맞히는 최상위권… 그들의 노하우엔 ‘과학’이 있다

[1] 찍기는 ‘논리’다…정답을 유추하라

“한두 문제 때문에 석차가 뒤바뀌는 중간·기말고사에선 찍기도 전략적으로 해야 해요. 평소 문제를 풀며 체득한 감(感)이 중요해요. 이를 정답을 고르는 나만의 법칙으로 구체화하면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답을 신속히 고를 수 있죠.”

중1 때부터 지금까지 전교 5등 안팎을 유지하고 있는 부산 이사벨고 2학년 김은실 양. 김 양은 평소 꾸준히 문제를 풀며 쌓은 노하우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해 자신만의 ‘찍기 법칙’을 세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핵심 불변의 법칙’. 국어, 사회, 과학시험에서 특히 효과적인 이 법칙은 선택지 두 개 중 어떤 것이 정답인지 헷갈리는 객관식 문제에 활용된다. 선택지마다 복잡하게 설명된 내용을 극도로 단순화해 단 하나의 핵심어로 추려내는 것. 그리고는 이 핵심어를 제시된 문제의 핵심어와 비교해 가장 가깝거나 가장 먼 관계에 있는 선택지를 정답으로 고른다(사례1 참조).

‘옳은 것’ 혹은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와 맞닥뜨려 정답을 콕 짚어낼 수 없을 땐 ‘비교·분석의 법칙’을 이용한다. 문제의 내용을 일단 접어둔 채 선택지 5개에 집중한다. 다른 4개와는 이질적인 내용을 담은 선택지 하나를 답으로 고르는 방법이다(사례2 참조).

“완벽하게 공부했다고 해도 막상 시험을 보면 헷갈리거나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 바람에 전 과목 중 5∼10개 문제는 ‘찍기’도 해요. 이런 법칙을 써보니 정답률이 70%에 이르더라고요. 평소에도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골라내는 방법이 없는지 연구하며 문제를 풀어요.”(김 양)

평균 95점 이상인 경기 백신중 3학년 두승연 양도 자신만의 ‘연상기법’을 활용해 논리적으로 답을 고른다.

“중국어 기말고사에서 ‘空港’을 우리말로 쓰라는 문제가 나왔어요. 답을 몰라 한참 고민하다가 눈을 감고 본문내용을 찬찬히 생각해봤죠. 시험범위인 2개 단원에 등장하는 단어 중 두 글자로 이뤄진 한자어는 ‘공항’밖에 없었어요. 반신반의하며 ‘공항’이라고 써냈는데, 진짜 정답이었지 뭐예요.(웃음)”

두 양의 연상기법 원리는 이렇다. 먼저 문제가 출제된 단원과 학습목표, 필기로 가득한 교과서 페이지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이후 그 단원을 배웠던 수업시간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에피소드를 들려줬거나 힘주어 강조했던 순간들을 모조리 회상해본다. 그러면서 몇 개의 핵심단어들이 떠오르면 이에 가장 가까운 선택지를 답으로 ‘찍는’다.

최상위권 학생 중 일부는 수업시간에 교사가 입었던 옷 색깔과 교사가 지나가며 던진 농담까지도 떠올려 정답에 접근하는 실마리로 삼는다. 반 1등인 중3 김모 양(15·경기 고양시)은 영어시험에서 갑자기 ‘apology(어펄러지·사과하다)’란 단어의 뜻이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지만, 이내 “사과할 땐 엎어져서 해야지”라고 했던 영어선생님의 농담을 기억해내 고비를 넘겼다.

[2] 찍기는 ‘확률’이다…정답의 포위망을 좁혀라

딱 하나의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최상위권들은 오답부터 지워나가며 정답의 ‘포위망’을 좁혀가는 방식을 쓴다. 무조건 찍으면 정답일 확률은 20%이지만, 오답을 지워나가면 정답을 고를 확률은 40%, 60%, 80%로 점차 높아진다.

반 1등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서울 청원중 3학년 K 군에겐 ‘확실한 오답’을 가려내는 기준이 있다. △‘항상’ ‘절대’처럼 단정적인 표현이 섞인 선택지 △수업시간에나 교과서·문제집에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가 포함된 선택지 △의도적으로 사용한 듯한 어려운 단어가 있는 선택지는 오답일 확률이 높다고 K 군은 말했다.

“지나치게 문제에만 집착하면 판단력을 흐리게 돼요. 괜히 어렵고 그럴듯해 보이는 선택지를 고르는 함정에 빠지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해요. 첫째, ‘모든 법칙과 이론엔 예외가 있다’는 점, 그리고 둘째,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은 시험에도 안 나온다’는 점이죠.”

‘로코코 양식’ ‘패러디’ ‘에게 문명’처럼 해당 용어를 100% 확실하게 암기하고 있지 않으면 문제를 맞힐 수 없는 경우에도 비법은 있다. 선택지에 나온 단어들을 재료 삼아 답을 거꾸로 ‘창조’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술과목에서 ‘어느 시대의 작품인가’와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하자. 답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는다. 그림에 등장하는 배경, 인물, 소재, 색채, 터치 등을 유심히 살핀 뒤 떠오르는 단어들을 죽 적는다. 그리곤 그 단어들을 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보는 식이다.

최상위권인 중3 K 양은 “푸른 대지가 펼쳐진 모습을 담은 그림 하나를 보여주면서 작품의 양식을 묻는 주관식 문제가 미술과목 기말고사에 나와서 순간 멈칫했다”면서 “하지만 평정심을 찾고 그림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자연, 대지, 미술, 양식 등의 단어를 차례로 떠올리다가 ‘대지미술’이라고 답을 적었는데 적중했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최상위권이 구사하는 ‘찍기’의 실전 노하우

# 사례1

[ 고등학교 1학년 과학 ]

○ 벌에 쏘이면 묽은 암모니아수를 바른다. 다음 중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 경우가 아닌 것은?

① 비린내 나는 생선회에 레몬즙을 뿌린다.

② 신 김치에 달걀 껍데기를 넣는다.

③ 산성화된 토양에 석회 가루를 뿌려준다.

④ 위액이 과다하게 분비돼 속이 쓰릴 때 제산제를 먹는다.

⑤ 하수구가 막힌 세면대에 하수구 세척액을 붓는다.

▶ 똑똑한 찍기① ‘핵심어 불변의 법칙’

‘벌에 쏘이면 묽은 암모니아수를 바른다’를 통해 문제의 핵심은 ‘산+염기’, 즉 ‘중화반응’이란 걸 알 수 있다. 선택지에 산과 염기에 해당하는 단어가 모두 있다면 정답이 아니다. 예를 들어 ①번에는 ‘비린내(염기)’와 ‘레몬즙(산)’ 두 단어를 통해 중화반응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반면 ⑤번 ‘세척액’이란 염기뿐이다. 이렇게 선택지의 핵심 단어를 골라내는 것만으로도 정답이 ⑤번임을 알 수 있다.

# 사례2

[ 중학교 3학년 사회 ]

○ 방곡령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일본의 경제적 침투에 대항하여 내려진 조치이다.

② 일본의 배상 강요에 결국 조선 정부가 굴복하였다.

③ 방곡령의 결과 조선 농민의 생활이 더욱 쪼들리게 되었다.

④ 일부 지방에서 일본으로 곡식이 유출되는 것을 금지하였다.

⑤ 조선 정부가 경제적으로 일본에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똑똑한 찍기② ‘비교·분석의 법칙’

주어진 선택지 내용을 비교해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석한 뒤 답을 선택한다.

④번은 방곡령의 정의다. ① ② ③번엔 각각 ‘침투’ ‘굴복’ ‘쪼들리다’ 등의 단어를 사용해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반면 ⑤번은 ‘경제적인 독립’이라는 긍정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있어 다른 내용과는 차이를 보인다. 방곡령에 대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이처럼 선택지 내용을 비교, 분석해서 읽으면 정답이 ⑤번임을 유추할 수 있다.

(문제제공:비상공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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