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5천원의 행복-세종나눔앙상블

  • 입력 2009년 7월 5일 18시 43분


세종나눔앙상블은 지난해 11월 세종문화회관이 ‘베토벤 바이러스의 꿈은 이루어진다’를 앞세워 모집한 순수 시민으로 구성된 연주단체다. 단원 모집 당시 경쟁률은 9대 1.

이틀간의 오디션 중 둘째 날 직접 찾아가 뜨거운 열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단원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됐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직업군도 다양하다. 의사, 교사, 엔지니어, 비서, 주부 등 한때 음악도의 꿈을 키웠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날개를 접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악기 하나하나에는, 그래서 사연이 묻어있다.

7월 5일 세종M씨어터에서 세종나눔앙상블의 창단 연주회가 있었다. 35명의 단원들이 1월부터 6개월 여 간 ‘죽도록’ 연습한 결과다. 주1회의 연습일에는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결석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 공연임에도 객석은 가득 찼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기자가 지금까지 M씨어터를 방문한 중에서 이날처럼 로비가 바글거린 적이 없었을 정도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에 의하면 2주 전에 표가 완전 매진됐다고 한다.

공연티켓은 전석 5천원. 공연수입은 한국해비타트의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첫 곡은 로시니의 ‘현을 위한 소나타 2번’. 로시니의 유년작으로 밝고 경쾌한 작품이다.

프로의 연주가 아닌 만큼 ‘어지간하면 넘어가자’하고 마음을 열었다. 그런데 수상하다. 첫 음에서부터 ‘이거, 장난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든다. 수전 보일의 입이 열렸을 때, 심사위원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물론 세종나눔앙상블의 연주가 완벽했다는 뜻은 아니다. 고음에서 종종 음이 어긋났고, 바이올린의 ‘깽깽’소리도(아주 가끔이지만) 옥에 티였다. 이들의 현에서 프로악단의 비단 위를 걷는 듯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관객 역시 아마추어스러웠다. 악장 사이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제일가는 금기인 박수를 쳤고,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2악장이 시작되자 “엄마, 또 하는 거야?”하는 아이의 짜증 섞인 말소리가 들려왔을 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생업의 틈을 쪼개 음악의 꿈을 불사른 이들에게서 프로페셔널의 음악세계를 기대해야 옳다는 말인가. 세종나눔앙상블은 이날 잘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면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꽝 찍어 주고 싶다.

피호영과 협연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에서 슬슬 딱딱한 어깨가 풀리는가 싶더니, 마지막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에서는 드디어 이들이 ‘날았다’!

3악장과 4악장의 집중력은 가히 프로의 냄새가 날 정도였다. 죌 땐 죄고 풀 땐 마음껏 풀었다. 4악장의 화려한 폭발은 정말 대단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냉장고에서 갓 꺼내 흔든 샴페인 뚜껑을 딴 듯 열렬하고 시원한 박수가 쏟아졌다.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무대 위의 연주자와 똑같은 질의 행복감이 바이러스처럼 객석에 퍼져 있었다. 그렇다. 음악을 사랑하는 데는 프로와 아마추어가 따로 없는 법이다.

세 차례나 무대로 불려 나온 지휘자 보리스 페레누는 세종나눔앙상블과 함께 브람스의 헝가리무곡을 앙코르로 들려주었다. 앙코르까지 마쳤지만 관객들은 이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지휘자가 악장과 뭔가 의견을 나누더니 또 한 번의 앙코르곡이 이어졌다.

또 한 번의 헝가리무곡이었다. 지휘자도, 단원들도 관객들이 이렇게 열광하리라 상상하지 못했기에 두 번째 앙코르곡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헝가리무곡이 ‘재탕’되는 동안 관객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작아지는 부분에선 박수가 잦아들고, 힘찬 부분에선 박수도 함께 커졌다.

전 세계를 돌며 온갖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지휘자도 이날의 경험은 흔치 않았을 것이다. 무대와 객석의 벽은 이날 이렇게 허물어졌다.

일요일의 행복한 오후. 세종나눔앙상블과 함께 나눈 음악의 힘은 진정 위대했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그 어디서 5천원으로 이처럼 가슴 벅찬 행복을 다시 살 수 있을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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