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무책임-무대책-무기력 ‘4無’가 법개정 무산 주범

  • 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1일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무산에 따른 정부 측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과천=김재명 기자
1일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무산에 따른 정부 측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과천=김재명 기자
● 무능력 한나라

실태조사 없이 코앞 닥쳐서야 법안 발의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 개정 과정에서 책임 있는 여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협상 막판에 법 적용을 1년까지 유예할 수 있다고 양보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1년 6개월까지는 양보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다”고 맞섰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법 적용이 1년 유예되면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리는데 민주당이 비정규직보호법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협상을 결렬시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하지 않고 협상에 나서는 바람에 협상 과정에서 입지도 크게 좁아졌다. ‘5인 연석회의’ 한나라당 대표로 참가한 조원진 의원은 “노동부조차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어 협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출신의 김성태 의원은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 같은 곳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실태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털어놨다.

3당 교섭단체와 양대 노총이 참여한 ‘5인 연석회의’에서 문제를 풀려고 했던 것도 오히려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한 초선 의원은 “정규직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한국노총, 민주노총과 머리를 맞대고 비정규직 해법을 찾으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1월 하순 당정청 회의에서 한나라당은 법 개정의 시급성을 감안해 정부입법이 아닌 의원입법으로 처리하기로 했지만 정작 법안은 발의되지 않았다. 임태희 당시 정책위의장이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의원들이 없어서…”라고 말을 흐릴 정도로 책임지는 여당 의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무책임 민주

비정규직 생존보다 ‘지지기반’ 노총 눈치

민주당은 옛 열린우리당 시절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노동계와 업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민주당은 이 법이 완벽하지 않으며 문제점을 보완할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법이 2007년 7월 1일 발효된 이래 민주당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위치가 바뀌기는 했지만 민주당에서 한 일은 거의 찾기 어렵다.

여당이었을 때는 대통령선거에 매달려 보완책을 내놓지도 않았고 2008년 야당이 된 뒤에도 정부에 보완책 마련을 제대로 촉구하지도 않았다. 올 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추가경정예산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이를 반복한 게 거의 전부다. 당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지원금이 과연 최선의 대책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5인 연석회의 협상 과정에서도 민주당이 양대 노총의 눈치를 너무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민주당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생존보다는 지지기반 다지기에 더 신경을 쓴 것 아니냐는 것이다. 양대 노총은 “시행 유예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사업장 종업원 수에 따라 시행 유예기간을 차등 적용하자는 안을 내놨을 때 민주당은 ‘준비기간’ 6개월 안을 고집하다 막판에 가서야 1년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민주당은 1일 발표한 ‘비정규직법 관련 Q&A’에서 정부 여당의 ‘100만 실직 대란설’은 근거가 없으며 법 적용 대상자는 최대 3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00만 명이든, 30만 명이든 실직 위기에 처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중시하지 않고 변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무대책 양대노총

대정부투쟁으로 활용… 대안없이 반대

비정규직 근로자의 대량해고 사태가 빚어진 데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이 이 문제를 노동운동 차원으로 접근한 데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은 상반기 내내 산하 사업장 탈퇴가 이어지고 화물연대 총파업 등 하투(夏鬪)가 사실상 무산되는 등 투쟁 동력을 상실한 상태. 한국노총도 공공기관 노사관계 선진화, 대졸 초임 삭감 등 일련의 정부 정책에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 반하는 정부 여당의 기간연장 또는 유예 방안은 대정부 투쟁을 이끌어 내기에 더 없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여야 노동계의 5인연석회의가 종료되기도 전인 지난달 29일 “정치권이 비정규 악법을 강행 통과시킬 경우 즉각적인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민주노총은 “1997년 노동법 날치기가 김영삼 정권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놓았듯이, 비정규직법 날치기는 이명박 정권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 불신임 투표 대중운동 돌입, 정권 퇴진 운동 등의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양대 노총은 또 “정부 여당이 턱없이 70만, 100만 해고설을 유포해 불안감만 가중시켰다”고 주장했지만 노총 스스로도 계약 해지자에 대한 해법보다는 해고 규모에 대한 숫자 공방에 매달렸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노총이라면 수가 얼마이든지 계약이 해지되는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무기력 정부

정치권-노동계 탓하며 해결책 마련 소홀

結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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