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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가늠못할 거장의 몸짓, 이젠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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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가늠못할 거장의 몸짓, 이젠 어디서…

입력 2009-07-02 02:59수정 2009-09-22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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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독일 부퍼탈에서 만나 다정한 한때를 보낸 피나 바우슈(왼쪽)와 하용부 씨. 사진 제공 사진작가 신귀만 씨

지난달 30일 타계한 무용극 창시자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슈를 그리며

2001년 국립무용단의 찬조 출연자로 독일 순회공연에 올랐다. 거기에 나를 기다렸다는 마른 무용가가 있었다. 탄츠테아터(무용극)의 창시자 피나 바우슈, 나를 보고 싶어 안달했노라고 했다. 나를 기다린 나를 모르는 사람. 나중에 알고 보니 국립무용단에서 주최했던 춤판 ‘4인 4색’의 비디오가 그에게 전달됐던 것이다.

세계적인 안무가. 같은 춤이라도 나는 전통에 묻혀 사는지라 세상 물정을 몰라 그분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가 처음 대면한 순간, 불꽃이 일고 있음을 느꼈다. 그분의 춤이 세계를 휘어잡은 역사는 굳이 필요 없었다. 다만 환히 열린 어떤 것이 나를 감싸면서 다가왔다. 순회공연 중 공연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람을 보내와 그의 근거지인 부퍼탈에 갔고 와인을 마셨다. 부퍼탈에서의 일주일, 그것은 꿈같은 나날이었다.

2003년 그를 세계적으로 더 유명하게 만든 도시 연작 공연이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기자 한 명이 두 분은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대화하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우리가 독일어와 한국어, 언어의 벽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독일어 영어는 고사하고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밀양사투리만 하는 내가 밤새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대답은 해야겠기에 대화에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답했다. 우리는 정신만 빠져나와 2인무를 추었던 것이다. 공연을 마친 뒤 만났을 때 같은 질문이 나왔다. 그때 그는 이렇게 앉아 눈빛만으로 우리는 대화하고 있지 않느냐며 나를 한 번 쳐다봤다.

2004년 한국을 주제로 정한 작품 ‘러프 컷’을 만들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남해 별신굿을 보러 통영으로 오면서 나를 찾았다. 굿판이 끝날 즈음 나는 그를 환영하는 즉흥무를 펼쳤다. 내 춤이 무아지경에 접어들 무렵 그분은 마치 굿판에서 기도하는 한국의 숱한 할머니들처럼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언어와 민족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예술가를 보았다.

올봄 프랑스 상상축제에 초청받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서 춤을 마치고 4월 초 부퍼탈에 들러 그를 만난 것이 마지막이 됐다. 마침 자신의 작품을 끝낸 바우슈는 친근한 단원들과 함께 봄 술을 들이켰다. 그때 매화가 막 피어났고, 하늘엔 달이 밝았다. 그는 먼 곳에서 춤 벗이 왔다고 기뻐하며 백 살까지 살자고 약속했는데 두 달이 채 못 돼 하늘로 갔다. 한국 춤의 신명을 배우고 싶다면서 내게 배운 자진모리 빠른 장단에 몸을 맡기듯 너무도 황급히 가버렸다.

지금 하늘에서 수천 송이의 카네이션이 떨어지는 것 같다. 국화 대신 당신의 작품처럼 카네이션으로 삶을 가득 채운 사람. 그렇다. 5월 어머니의 가슴에 달아드렸던 그 카네이션인지도 모른다. 그는 분명 세계 춤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내게는 할아버지(고 하보경 씨) 이후 말 대신 몸으로 뜻을 나눈 유일한 사람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하용부 씨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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