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茗禪’ 위작 논쟁 2라운드

  • 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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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 예서체의 전형을 보여 주는 ‘백석신군비’ 비문에서 집자한 ‘명선’ 글씨(왼쪽)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진 ‘명선’. 비문의 글씨를 원용해서 썼다고 하지만 정작 그 필체는 다르다. 사진 제공 월간 ‘차의 세계’
한대 예서체의 전형을 보여 주는 ‘백석신군비’ 비문에서 집자한 ‘명선’ 글씨(왼쪽)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진 ‘명선’. 비문의 글씨를 원용해서 썼다고 하지만 정작 그 필체는 다르다. 사진 제공 월간 ‘차의 세계’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졌지만 위작 논란에 휩싸였던 ‘茗禪’(명선·차의 경지와 선의 경지가 같다는 뜻·간송미술관 소장) 글씨의 위작 논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이 글씨는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이 추사의 글씨가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다.

월간 ‘차의 세계’ 9월호는 이 글씨의 제문(題文)에서 서체를 원용했다고 밝힌 ‘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의 실체를 중국에서 확인했다며 이로써 진위 논쟁이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 잡지는 중국 허베이(河北) 성 위안시(元氏) 현의 명산 백석산을 찬미한 이 비석이 백석산에서 25km 떨어진 봉룡산의 한비당(漢碑堂·한나라 때 비석을 모아둔 사당)에 보관돼 있다며 그 사진을 공개했다.

잡지는 183년에 새겨졌다는 이 비문이 한나라 때 글씨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금석학의 대가이자 추사의 스승이었던 옹방강 등이 “한대 비문 중 가장 힘이 넘친다”고 극찬한 글씨로 추사가 1830년 이를 탁본으로 입수했다고 전했다.

잡지는 ‘명선’ 글씨가 기존 추사체와 다른 이유는 한대 예서체로 쓰인 백석신군비의 필의(筆意)를 모방했기 때문이라며 백석신군비에서 집자한 ‘명선’과 논란이 된 ‘명선’을 비교하는 사진을 나란히 게재했다.

그러나 강 원장은 이를 본 뒤 “실제 두 글씨를 비교하면 추사의 글씨라고 알려진 것이 위작임이 더 분명해진다”고 다시 반박했다. 백석신군비문은 짜여 있으면서도 힘이 넘치는 한대 예서체의 전형을 보여 주는 반면 ‘명선’의 서체는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비문의 글씨는 처음엔 가늘다 마지막에 굵어지면서 특히 삐침이 힘차고 날카로우나, ‘명선’의 글씨는 획의 굵기에 변화가 없고 삐침도 힘없이 뭉툭하게 끝난다. 두 글씨의 구(口)자만 비교해도 백석신군비의 ‘口’는 왼쪽 가로내림이 한결같이 곡선으로 휘어 있고 오른쪽 가로내림은 힘차고 뚜렷하지만 ‘명선’의 ‘口’는 왼쪽 가로내림이 모두 직선인 데다 오른쪽 가로내림은 힘이 없고 희미하다.

강 원장은 “서예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개의 서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신필이라 불리는 추사가 그런 졸필을 구사했을 리 없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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