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칼럼]자유세계에 부끄러운 언론탄압

  • 입력 2007년 8월 31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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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혁명의 설계자들은 자유로운 언론이 없이는 시민의 자유가 존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독립선언서를 기초(起草)한 토머스 제퍼슨은 “우리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곧 모든 자유를 잃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론은 3부를 견제하는 제4부”

미국이 독립을 선포한 지 11년 만인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시민의 자유를 적절히 보장하는 장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4년 뒤 각 주의 비준을 받아 권리장전이라고 부르는 10개 조항이 추가됐다. 이것이 바로 수정헌법이다. 수정헌법 1조에 ‘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언론과 권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권력의 전횡으로부터 언론을 보호하기 위해 의회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도록 헌법 조문에 못 박은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은 1974년 “수정헌법 1조의 목적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대한 추가적인 견제로써 정부 제도 밖에 제4부를 창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방대법원은 정부 권력이 언론자유를 제약하려고 들 때마다 수정헌법 1조를 인용해 견제했다.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 재임 19년(1986∼2005년) 동안에 대법원은 언론자유와 관련해 연방법률 13개, 주법 8개, 하위 지방법 4개를 무효로 했다.

우리 헌법은 21조에 언론 출판의 자유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신문의 자유에는 기사를 취재 편집하고 신문을 발행해서 보급하는 자유가 포함돼 있다. 허영 명지대 교수는 역저(力著) ‘한국헌법론’에서 “취재의 자유는 신문의 자유의 불가결(不可缺)한 내용이다. 취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주는 뉴스’만을 편집 보도하는 경우, 그것은 이미 신문의 기능을 상실한 아웃풋(출력)의 창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정부는 총리 훈령이라는 내부 규칙으로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는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본질적인 수단이다. 헌법적 기본권은 법률로만 제약할 수 있고, 그 경우에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법치주의의 기본원칙이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을 만나거나 전화를 걸려면 공보관실에 신고하라는 것은 사실상 취재를 원천 봉쇄하는 조치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정윤재 대통령비서관의 사표 수리가 건설업자와 국세청 간부의 뇌물 수수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브리핑을 했다. 이런 거짓 브리핑만 보도하고 취재는 일절 하지 말라는 뜻인가. 5공 말기에 경찰은 박종철 군을 조사하다 책상을 ‘탁’ 쳤더니 ‘억’ 하고 죽더라고 브리핑했다. 언론이 이를 그대로 옮기기만 했더라면 6월 민주항쟁의 불길을 댕길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낸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하면서 연방수사국(FBI) 마크 펠트 부국장을 비롯해 1000명이 넘는 사람을 인터뷰했다. 우드워드 기자는 집 발코니에 빨간 깃발을 꽂은 화분을 내놓아 펠트 부국장에게 신호를 보내 지하주차장에서 간첩 접선하듯이 만났다.

원래 진실은 브리핑이 아니라 ‘딥 스로트(Deep throat)’에서 나올 때가 많다. 중앙일간신문 학술담당 기자를 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나 언론단체 기관지에서 일한 양정철 대통령비서관은 정치 사회의 뜨거운 현장에서 취재의 기본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자유언론의 ABC도 무시하는 바보짓을 하고 있다.

‘보도지침’보다 교활한 ‘취재지침’

정부의 취재 봉쇄 조치에 대해서는 문화일보가 이석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전원재판부에 회부했다. 정권이 바뀌어 총리 훈령이 사라지고 난 뒤에 헌재 결정이 나오면 체면을 구기는 뒷북이 될 것이다.

미국 닉슨 행정부는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베트남전과 관련한 국방부 비밀문서 보도 금지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자 연방대법원은 2주 만에 결론을 내려 뉴욕타임스가 비밀문서 요지를 계속 실을 수 있도록 했다. 신속하게 신문의 권리를 회복해 준 것이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보도지침’을 만들어 언론 보도를 통제했다. 일종의 사전 검열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취재를 봉쇄함으로써 불리한 보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한다. ‘보도지침’보다 더 악질적인 ‘취재지침’이다. 자유민주세계의 일원으로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운 언론탄압이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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