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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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요하임 바우어 지음·이미옥 옮김/262쪽·1만3000원·에코리브르

“생명체는 유전자의 최대 증식을 위해 고안된 유전자의 생존 기계다.”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발표해 인간 본성의 문제로 확대된 ‘이기적 유전자’론이다. 유전자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생존을 위해 무한 투쟁을 한다는 게 그 주장의 요체이다. 달리 말해 투쟁과 경쟁, 그에 따른 도태를 내세운 다윈주의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으로 부활한 것이다.

신경생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론에 맞선다. ‘이기적 유전자’는 과학이 아니라 공상이었으며 유전자는 투쟁이 아니라 협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 서문에 도킨스가 ‘이 책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읽혀야 한다. 이 책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가 10년 뒤 2판 서문에는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미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볼 수 있다’로 고쳐 쓰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지적했다.

사회생물학이 적자생존이나 생존 투쟁 등 다윈의 모델과 시장경제원리를 무비판적으로 끌어들였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미국의 여성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투쟁이나 적자생존은 경제학에서 파생돼 생물학에 적용된 인위적인 개념일 뿐이며 경제학의 지배적인 개념들은 생물학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도킨스의 주장처럼 세포는 이기적 유전자의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유전자 간 협력으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한때 박테리아였던 미토콘드리아도 세포 내 공생의 과정을 통해 원시 단세포 생물과 한 몸이 됐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인간 본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인간의 본성은 투쟁이 아니라 협력 공생이라는 특질이라는 것.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동기부여체계(보상체계)나 사회적 뇌, 후성학(유전적 배열의 변화를 포함하지 않는 유전형질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 등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동원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체계는 목표지향적인 행위를 유발한다. 이를 촉진하는 도파민 옥시토신 등 신경전달물질은 애착이나 신뢰에서 생성되는 행복전달물질. 러셀 퍼낼드가 주장한 ‘사회적 뇌’도 동기부여체계의 목표가 사회적 결속이며 성공적인 인간 관계, 나아가 모든 형태의 사회적 상호 작용이라는 점을 밝혔다. 최근 후성학은 유전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타고난 범죄자’ 같은 유전자의 고정 타입은 환경에 의해 달라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에 따르면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애정의 결핍은 동기부여체계의 기능을 현저히 저하시켜 공격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유전자의 동인이 투쟁이나 경쟁이 아니라는 점에 납득이 가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연이나 사회 환경에서 생존 투쟁이 격렬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기적 유전자’와 ‘협력적 유전자’의 접점에 기대가 모아진다. 양자의 논쟁은 해묵은 것인데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인 듯하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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