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별]극작가 장유정 씨의 ‘짝사랑’소설가 최인호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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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은 스무 살에 ‘진달래꽃’을 쓰고 최인호(사진)는 고교 2학년 때 신춘문예에 입선했어. 넌 대체 커서 뭐가 될래?”

선배 M이 혀를 끌끌 찼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 쓰라는 글은 안 쓰고 학회 방에서 소주 마시다 걸린 것이다. 1995년 나는 ‘극문학연구회’라는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었다. 매해 신작 희곡 한 편씩 공연했던 이 동아리는 회원 모두가 극작가이자 배우였다. 각자 맡은 장면을 매일 5, 6쪽씩 써 오는 공동창작체제였는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호되게 야단맞기 일쑤였다.

“아이 참, 필(feel)을 받아야 쓰죠.” “작가가 되려면 항상 쓰고 싶은 말이 가슴속에 차 있어야지.”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내가 최인호예요? 선배는 나만 미워해.”

나는 술김에 안 써지는 글을 핑계 삼아 펑펑 울었다. 젊은 게 죄인 날들이었다. 가슴속에 뭉친 타래를 찬찬히 풀어 고운 글로 표현하기엔 모든 게 너무 뜨거웠다. 그날 난 학교의 잔디밭에서 “신은 왜 공평하질 않고 너만 그리 잘나게 만든 거냐, 최인호!” 하며 데굴데굴 뒹굴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동기들은 ‘쟤 오늘 남자친구한테 차였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왕도의 비밀’ 출판 직후라 당시 국문학도들에게 최인호 선생님은 신이나 다름없었다. 나 역시 선생님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선생님의 문체는 사람을 이상스럽게 달궈 놔서 몇 시간씩 비를 맞아도 열이 식을 줄 몰랐다. 시 쓰는 여자 선배들은 작가가 될 수 없다면 작가의 애인으로라도 살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기왕 연애할 거 최인호와 하겠다’는 사람이 단연 많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도 희대의 로맨티시스트였으니 한국의 대표 낭만소설 ‘겨울 나그네’를 쓴 최인호 선생도 만만치 않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선생님과 나란히 있는 그림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려 웃지도 못했다. 그렇게 치기어린 학창시절은 ‘저녁놀 속에 사라지는 굴뚝 위의 흰 연기처럼’ 사라져 갔다.

10여 년 후. 나는 혜화동에 있는 한 연극기획사의 쪽방을 얻어 새 연극의 초고를 쓰고 있었다. 알고 지내던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뮤지컬 얘기도 할 겸 최인호 선생님과 점심을 같이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잊고 지내던 첫사랑의 소식을 우연히 들은 것처럼 헉, 하고 숨이 막혔다. 어떻게 약속을 정했는지조차 모르게 전화를 끊자 기획사 여직원들이 몰려들었다. 그녀들 역시 숨은 팬이었던 것이다. 사인을 받아 와라, 단추를 뜯어 와라, 주문도 가지가지였다.

한남동에 있는 선생님의 작업실은 고요했다. 병원에 가신 선생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다. 기다랗게 누울 수 있는 의자, ‘불새’, ‘해신’, ‘지구인’ 등이 꽂혀 있는 아담한 책장, 젊은 시절 찍은 흑백사진, 작은 뜰이 마주보이는 발코니.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쿠바산 시가 냄새가 아찔했다. 대문으로 연결된 창문 밖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았다. 선생님이 오신 것이다.

선생님은 근사하게 늙어 있었다. 늙었지만 낡지 않은 어른은 참 흔치 않다. 선생님은 거침없이 악수를 청했고 내 이름을 물으셨다. 비몽사몽 황홀한 와중에 점심 식사가 들어왔다. 선생님은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지 않고 일하시는 할머니께서 차려준 대로 드신다고 했다. 아, 선생님 같은 만인의 연인도 갈비탕에 콩나물 무침을 먹는구나. 나는 별스러운 것에 다 감격했다. 자세히 보니 선생님은 ‘길 없는 길’의 경허 스님 같기도 했다.

한 번의 술자리와 몇 차례의 전화 통화 후 이제 선생님은 내 이름을 대면 “아∼ 유정이!” 하며 반가워하실 정도가 되었다. 도중에 나는 결혼도 했다. 하지만 결혼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 못지않게 선생님의 열혈 팬인 신랑은 왜 청첩장을 드리지 않느냐며 의아해했다. 속으로 나는 ‘짝사랑했던 남자한테 자기 결혼 알리는 여자가 어디 있느냐?’고 중얼거렸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달라진 환경과 새로 생긴 관계, 그리고 왠지 내 청춘이 끝났다는 생각에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조각 글도 못 쓰는 날이 몇 주째 계속됐다. 어느 날 새벽,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엉엉 우는 소리에 자다 깬 신랑은 차분히 이야기를 다 듣더니 최인호 선생님을 한번 찾아가 뵈라고 했다. 다음 날 일찍 나는 한남동으로 갔다.

“선생님, 세상엔 지금 이 시간에도 정말 힘들고 버거운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데 전 그까짓 글 좀 안 써진다고 울었습니다.”

어렵게 말을 꺼낸 건 어린 것이 오만한 고민에 빠졌다고 역정을 내실까 봐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나도 울어. 한번 울면 지금도 펑펑 울어. 마감은 코앞인데 죽어도 글이 안 써져. 나 때문에 신문 못 찍는다고 난리를 치는데 한 줄도 생각이 안 나. 그럼 어떻게 해. 그냥 울어. 그리고 다시 써!”

‘길 없는 길’에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대목이 있다. 두려움을 만나면 두려움을 죽여야 한다. 울든, 발버둥을 치든 마주보지 않으면 상대가 어디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야 하고 안 써지면 다시 써야 한다.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가 바로 청춘인 것이다. 육순의 선생님은 서른의 나에게 힘내라며 손을 뻗는다. 아직도 깊고 푸른 청춘, 그가 바로 최인호다.

장유정 뮤지컬 연출가·극작가

■“유정이는 공연계의 제5원소”

인기 창작뮤지컬 ‘김종욱 찾기’와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직접 쓰고 연출해 뮤지컬계의 스타로 떠오른 연출가 겸 극작가 장유정(31·사진) 씨.

장 씨는 “‘겨울 나그네’ ‘몽유도원도’ 등이 이미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최인호 선생님의 작품은 드라마틱해서 다른 소설도 충분히 대형 뮤지컬로 각색할 만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절대 선생님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는? “좋은 글을 단 한 글자도 고치고 싶지 않아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겨울 나그네’와 ‘길 없는 길’이다. 특히 ‘길 없는 길’의 주인공인 ‘경허 스님’이 최인호 씨를 닮았다고 했다.

이를 전해들은 최 씨는 “허, 날카로운걸. 그 아가씨 눈이 밝은가 보네” 했다. 그리고는 “나도 가끔씩 내가 전생에 수도자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어느 스님은 내가 전생에 스님이었을 거라던데…”라고 말했다.

지난해 처음 만난 장 씨에 대해서는 “굉장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친구”라고 말했다. “아주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에다 에너지가 넘쳐. 아, 공연계에 ‘제5원소’가 하나 태어났구나 싶더라니까.”

글 쓰는 선배로서 애정 어린 충고도 곁들였다. “‘누구보다 더 낫다’는 비교급이 되지 말고 최상급이 되라”고.

청첩장도 차마 못 드릴 만큼 연모(?)하더라는 말을 전하자 최 씨는 “그래요?” 하고 소년처럼 웃더니 쑥스러운 듯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나한테 연락했음 흥행 수입은 좋았을 텐데….”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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