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도 ‘최한결’처럼”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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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극중 남자 주인공 ‘최한결(공유 분)’을 보며 회사원 박모(32) 씨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최한결은 잘생겼고 ‘몸짱’이며 매너 좋고 옷도 잘 입는다. 박 씨는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이런 남자가 현실에 있을까 싶지만 부인 최모(30) 씨는 ‘멋지다’를 연발한다.

박 씨의 스트레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내가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며 옷을 사 오고 남성용 화장품도 사 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박 씨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냥 입곤 한다”고 말했다.》

남성, 여성의 소비 대상이 되다

남성 화장품 광고에 조인성, 김명민, 비, 가전제품 광고에 지진희, 자동차 광고에 다니엘 헤니…. 최근 기업의 제품 광고에 남성 모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광고의 타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이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모델이 아니라 여성이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나온다.

또 화장품이나 패션 등 여성이 주요 소비자인 기업들은 ‘남성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각종 마케팅을 하고 있다. ‘당신의 남성을 꾸미라’고 유혹하는 것.

‘메트로섹슈얼’, ‘위버섹슈얼’, ‘크로스섹슈얼’ 등 최근 유행하는 패션코드가 모두 남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 이런 경향을 말해 준다.

젊은 층에 영향을 주는 영화, 드라마, 잡지 등 문화산업도 이런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면서 10대와 20대 남성은 이제 스스로 꾸미는 남성으로 변하고 있다. 여자들이 그런 남성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을 꾸미는 건 여성

국내의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4900억 원으로 추정된다. 국내 화장품 전체 시장 규모인 5조5000억 원의 약 9% 수준이다.

그러나 화장품을 사는 사람이 모두 자신을 적극적으로 꾸미는 남성은 아니다. 남성 화장품의 70%는 여성이 구매자다. 남성의 직접 구매 비중은 2005년 40%에서 2006년 29.6%로 매년 떨어지고 있다. 여성에 의해 남성이 꾸며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남성 화장품의 마케팅은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2월 여성 화장품 라인인 ‘라네즈’ 안에 남성 라인인 ‘라네즈 옴므’를 만들었다. 여성들이 쇼핑하며 남성 화장품을 함께 살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화장품 회사들은 여전히 화장에 수동적인 남성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커플을 대상으로 한 화장법 강의를 마련했다. 남성이 여자친구나 부인과 함께 화장하는 법을 배우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남성 의류도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 여성에 의해 구매된다.

20대∼30대 중반 남성 의류 시장의 여성 구매 비율은 약 40%. 화장품에 비해 낮지만 옷을 고르는 최종 결정권한은 여전히 부인이나 여자친구에게 있다. 코오롱의 남성정장 브랜드인 맨스타가 매장을 방문하는 여성 고객들에게 안동 간고등어나 참기름을 선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성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꾸미는 남성은 꾸준히 늘고 있다.

유진형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차장은 “이제 20대 초반부터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꾸미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피부과, 피부미용실, 성형외과, 치아미백의 고객층이 남성으로 확장되는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부드러운 남성을 원하는 사회

과거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남성다움과 힘이 중요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육체노동보다는 머리를 쓰는 지식 산업이 발달하면서 감성적이고 여성적인 속성이 중요해졌다.

문화산업의 남성적 이미지에 대한 시선의 변화도 이러한 흐름을 확대 재생산했다.

정진웅(문화인류학) 덕성여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광고에서 남성의 신체도 성적인 응시와 욕망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남성의 몸을 보여 주는 광고나 여성이 아닌 남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드라마, 영화 등의 등장으로 여성들이 남성을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진용(경영학) 서울산업대 교수는 “이제 전통적인 남성상은 환영받지 못하며 이러한 현상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세상의 나머지 절반도 꾸미게 하려는 패션과 미용업계의 치열한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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