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神’ 침체 인문서적시장에 해법 던졌다

  • 입력 2007년 8월 2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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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신작 ‘만들어진 신’(김영사)이 심상찮다. 지난달 20일 출간된 지 한 달여 만에 판매 4만3000부(출고부수 기준)를 넘었다. 하루 1400여 부 팔린 셈이다. 요즘 인문서적은 7000부만 나가도 베스트셀러로 통한다. 교보문고 남성호 홍보팀장은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후 인문서적 최대의 태풍”이라고 말했다. ‘만들어진 신’은 왜 인기가 있을까.

장대익 서울대 과학문화연구센터 연구교수와 이권우 도서평론가, 온라인 서점 Yes24의 인문역사서적 담당 조선영 MD의 의견을 들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면서도 “이 책은 현 출판 시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데는 동의했다.

Q1

―인문서적 부활의 신호탄인가.

장 교수=부활보다 인문서적이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고 본다. ‘만들어진 신’은 인문적 소양이 깊은 과학자가 인문학 용어로 풀어 쓴 과학책이다. 종교에 대한 과학의 ‘딴죽 걸기’라고 할까. 국내 인문서적의 침체는 이런 ‘이슈 파이팅(issue fighting)’이 약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낼 구동력을 갖출 때 인문서적도 성공한다.

이 평론가=한국의 인문서적 침체는 인문학계가 초래한 결과다. 인문학자의 지적인 열기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 준다. 1980년대에는 자본주의를 논쟁한 인문서적들은 옳건 그르건 대중의 관심을 끌어냈다. 최근 인문서적 중에 현실에 발붙인 책이 어디 있나.

조 MD=인문서적 시장이 조금씩 커지고는 있다. 자기계발이나 경제실용서 성격의 책이 잘 나간다. ‘만들어진 신’은 분야와 상관없이 좋은 책이면 독자가 읽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Q2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이=뇌관을 건드렸다는 점에 공감한다. ‘만들어진 신’은 현대사회 문명의 토대가 된 종교를 파헤쳤다. 이 책의 열풍에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종교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식이 반영됐다. 출판에서도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적극적 반영이 중요하다.

조=초반 1∼2주를 보면 시류를 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인기는 별개의 문제다. 과거 9·11테러 때 관련 서적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정도만 베스트셀러가 됐다. 시의성 면에서 책은 인터넷이나 언론을 이길 수 없다. 그 이상의 것을 다룬 깊이가 있었기에 성공했다.

장=물론 좋은 책은 시류와 상관없다. 그러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도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란 시류를 탄 것 아닌가. 외국 저자의 책이 국내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긴 했다.

Q3

―최근 트렌드인 생물학 동물학에 대한 관심의 반영인가.

조=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 책의 반응이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의 책도 ‘이기적 유전자’를 제외하면 많이 판매되진 않았다. ‘만들어진 신’은 그런 트렌드와 별개다.

장=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최근 생물학 바람은 우리가 먹고살 만해졌음을 보여 준다. 우주와 생명의 역사에서 인간의 존재와 본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고급 독자를 중심으로 과학의 의미와 세계관에 주목하고 있다. ‘만들어진 신’을 비롯한 리처드 도킨스의 인기는 그 중심점이라 볼 수 있다.

이=동의한다. 하지만 지적 편향성은 주의해야 한다. 유전자 결정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다양한 논의가 오가야 한다. 국내 시장은 너무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Q4

―해외 베스트셀러의 국내 출판시장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장=해외 영향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국내에서 성역으로 취급되던 종교에 직격탄을 날린 점이 성공의 요인으로 보인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라는 브랜드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이=저자의 인기가 반영된 건 분명하다. 이번 성공은 시사점이 크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지적 화제를 우리가 쓰지 못하고 있다. 대학의 성과 시스템을 뜯어고쳐서라도 당대의 고민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

조=해외에서 화제가 된 책에 대한 관심이 크긴 하다. 현실적으로 전체 인문서적 시장이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만들어진 신’은 해외에서 출간되자마자 국내 반응이 뜨거웠다. 이 정도면 바람이 3, 4개월 이어질 것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만들어진 신’은:

‘이기적 유전자’(1976년)로 진화생물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리처드 도킨스(66)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신작. 해외에선 지난해 9월에 나왔다. 원제는 ‘The God Delusion’으로 ‘신은 망상’이라는 뜻이다. “극단적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 자체가 문제”라는 직설적인 주장으로 ‘무신론 근본주의’로 불리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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