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장밋빛 전망…“희망을 도둑맞았다”

  • 입력 2007년 8월 17일 2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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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박 모(36·서울 도봉구 쌍문동) 씨는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증시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믿고 6월 말 주식에 투자했다가 최근 주가 폭락으로 15% 가량 손해를 입었다.

박 씨는 "주가가 계속 오른다는 전망이 대부분이어서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투자할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아 급하게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코스피지수가 연일 급락하면서 낙관론 일색인 증시 전망의 한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밋빛으로만 가득 찬 증시 전망은 개인투자자들의 섣부른 주식 매입을 부추겨 큰 피해를 입히고, 이는 장기적으로 증시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높다.

●경고등 고장 난 한국 증시

지난달 25일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초로 2,000선을 돌파하자 대다수 증시전문가들은 "단기 조정을 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상승 추세를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각에서 미국 부동산 침체 등 위험 요인을 경고하기도 했지만 다수의 낙관론에 묻혀 버렸다.

이에 앞서 증권사들은 올해 연말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일제히 2000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으며 최고 2450선까지 높인 곳도 있었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어선 뒤 증시가 조정에 들어갔을 때도 '1800선이 지지선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6일 코스피지수는 1700선을 건너뛴 채 곧바로 1600대로 무너졌다. 이날 대우증권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은 "주가 폭락을 제대로 예측못해 죄송하다. 1800선은 지켜질 줄 알았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증시의 경고등 역할을 하는 비관론 또는 신중론이 사실상 사라진데 대해 증권업계에서는 한쪽으로 쏠리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긍정적 전망은 틀려도 큰 질책을 받지 않는 반면 비관적 예측이 어긋날 경우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제 의견을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송학 전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박윤수 전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유동원 전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증시 약세론을 펴다가 2005년 주가가 크게 오르자 모두 업계를 떠났다.

●"위험 알아야 투자 판단에도 도움"

특정 종목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려면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증시를 낙관론 일색으로 몰고간 요인이다.

올해 1월 '매도' 보고서를 냈던 CJ투자증권 최대식 연구원은 투자자들의 항의로 출근조차 하지 못하는 곤욕을 치렀다. 한 애널리스트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 해당 기업의 자료 협조를 받지 못하는 등 '왕따' 신세가 된다"며 "주식거래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인 증권사의 영업구조 상 활황장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반면 외국 증권사에서는 비관론자들이 당당히 목소리를 내면서 끊임없이 위험을 경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히는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아시아지역 담당대표는 올해 초 "미국 부동산 침체에 따른 위기가 세계 경제를 침체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변동성이 큰 증시에서는 위험 요인에 주목하는 비관론자가 있어야 투자 판단을 할 때 균형감을 가질 수 있다"며 "비판적 의견이 자리를 잡으려면 업계 차원의 노력과 함께 투자자들도 누가 주가를 잘 맞췄는지보다 그가 제시하는 논리가 얼마나 타당하고 의미 있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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