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슈뢰딩거의 고양이

  • 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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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와 함께 시안산(청산가리) 병, 방사성물질의 원자 하나를 넣어 둔다. 그 원자가 한 시간 안에 붕괴되면 병이 깨져 고양이가 시안산에 중독돼 죽는다. 원자가 그대로 있으면 고양이는 살아남는다. 우리는 상자 속을 알 수 없으므로 확률적으로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죽은 상태로 여겨진다. 이것이 양자역학 권위자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에어빈 슈뢰딩거가 제기한 고양이 패러독스다.

▷‘살아 있기도 하고 죽기도 한 고양이’는 미시세계에서 양자가 중첩(重疊)된 상태다. 슈뢰딩거는 그런 고양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설명하기 위해 이런 사고(思考)실험을 제안했다. 기존의 양자역학에서는 입자(粒子)는 파동성(波動性)이 있으므로 한 시점에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고양이는 반드시 살아 있거나 죽은 상태, 둘 중 하나이므로 입자는 여러 곳에 퍼져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복잡한 논란이 벌어진 것은 전자의 이상한 특성 때문이다. 요즘엔 중학생만 돼도 아는 사실이지만 전자는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성질을 띤다. 전자는 평소엔 파동 형태로 존재하지만 관찰자가 눈으로 관찰할 때는 입자로 바뀐다. 그래서 양자이론에선 세상은 관찰자의 개입에 따라 확률적으로 존재하며 여러 차원의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다른 내가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다는 SF영화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호주 퀸즐랜드대 연구원인 정현석 박사가 프랑스 연구진과 함께 사고실험에만 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만들어 냈다. 연구진은 광자(光子)들을 생성시킨 뒤 광자 빔을 둘로 나누고 한쪽에 특별한 광학적 조치를 가해 다른 한쪽에 광자가 나타나도록 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실린 이 논문에 과학계는 미시세계의 양자 중첩이 거시세계에서 가능함을 입증했다며 환호하고 있다.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한 축을 이루는 양자역학의 근본원리를 한국인이 풀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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