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어머니" 의왕 화재 유족들 오열

  • 입력 2007년 8월 10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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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화학물질 때문인지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최근 일감이 늘어 밤늦게까지 잔업을 해야만 하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다.

9일 발생한 경기 의왕시 고천동 W산업 화재 사고의 희생자 6명은 모두 60대 여성들이다. 생활비를 보태거나 "손자들 용돈이라도 벌겠다"며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작업대에 앉은 평범한 어머니이자 할머니들이다. 거의 매일 같이 오전 8시경 출근해 밤 10~11시까지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금중(61·여) 씨는 그래도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면 늘 생기가 돌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9살 손자가 그를 반겨주기 때문.

김 씨는 둘째 아들 내외를 대신해 두 살배기 손자를 초등학교 2학년생인 지금까지 힘든 줄 모르고 키워왔다. 손자에게 장난감과 과자를 사주는 재미로 하루 10시간이 넘는 힘든 일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손자의 재롱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10일 경기 안양시 메트로병원 영안실을 찾은 김 씨의 여동생(54)은 "손자 키우는 재미에 그렇게 말렸는데도 고된 일을 계속 다니더니…"라며 울먹였다.

김 씨와 함께 숨진 윤순금(60·여) 씨는 20여 년 전 남편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낸 뒤 홀로 두 남매를 키워낸 억척스런 어머니였다. 10월 윤 씨의 환갑에 가족 여행을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아들 이 모 씨는 어머니의 일을 끝내 말리지 못한 죄책감에 울부짖었다.

이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 혼자서 누나와 저를 키웠다"며 "일을 그만 두라고 해도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더니…"라며 가슴을 쳤다.

안양시 한림대병원에 안치된 변귀덕(60·여) 씨의 아들 강 모 씨는 어머니가 숨진 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을 발견했다.

강 씨는 "아버지도 일을 하셔서 생활이 어렵지 않았는데 왜 힘든 일을 계속 하시는지 이해를 못 했다. 돌아가신 뒤 내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고 말했다.

변 씨의 남편은 먼저 간 아내를 떠올리며 "잔업만 안 했어도 살았을 텐데…"라고 울먹였다.

의왕=이성호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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