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증시, ‘잔치’는 끝나고…

  • 입력 200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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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있는 주한 인도네시아대사관 앞은 증권가에서 증시 시황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증시 침체기엔 대사관 앞에 대기하는 택시 행렬이 길어지고, 주가가 오르면 택시 잡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대사관 부근엔 증권선물거래소를 비롯해 주요 증권회사의 본사가 들어서 있다.

지난달 하순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 2,000을 돌파할 즈음 대사관 앞 빈 택시는 눈에 띄게 줄었다.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 걸쳤거나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증권맨들이 호기 있게 택시를 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하지 않지만 증시 호황은 반가운 뉴스다. 경제의 거울이라는 주가가 오르는 것은 한국 경제가 호전되고 있거나, 적어도 장래가 어둡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의 관점에서도 주가 상승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직접금융시장인 증시 호황으로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쉬워지면 투자 확대-고용 증대-소득 증가-소비 촉진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한 달 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증시 열풍은 그래서 반가웠다. 코스피지수 3,000이 머지않다는 증권 전문가들의 예측은 왠지 미덥지 않았지만, 그래도 솔깃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것은 농촌 촌로들까지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주가가 한풀 꺾이면서 여의도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주가는 신도 모른다’는 증시 격언을 떠올리면 당장의 주가 추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례 없이 짧은 시간에 이뤄진 주가 급등과 급락은 한국 경제에 소중한 교훈과 숙제를 남겼다.

주가가 오르자 증시 주변은 흥청댔지만 경제 활력은 기대에 못 미쳤다.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높게 나왔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기업들은 여유자금을 생산활동보다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썼다.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이런 돈이 수십조 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한국 증시는 경제의 선순환 연결고리에서 이탈해 ‘나 홀로 호황’에 머무르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주가가 뛰자 증시 애널리스트들은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지금 주식을 사지 않으면 재산 증식의 대열에서 영원히 낙오될 것이라는 식의 위기감을 본의든 아니든 유포했다.

일부 외국계 증권사는 차익 실현을 권유했지만 국내 증권사 중에 이런 충고를 한 곳은 거의 없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중에도 개인투자자들은 사상 최대 규모로 사들였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조언이 당연히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개인은 이번에도 외국인과 기관에 완패했다. 개인이 많이 사들인 주식의 평균 하락률은 기관의 10배나 된다.

증시가 크게 출렁댄 뒤 계산기를 두드리면 어김없이 개인투자자만 손해를 보는 구조는 한국 증시가 선진 증시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증시는 당분간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주가 상승의 단맛에 취해 혹시 거품의 요소를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차분히 짚어 봐야 한다. 신용카드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거품은 당장은 달콤하지만 꺼질 때의 후유증은 혹독하지 않은가.

박원재 경제부 차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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