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이 같은 조치는 본토 수복을 포기하고 대만 독립을 추구해 온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정치노선이 처음 대규모 군사조치를 통해 현실화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베이징(北京)의 군사전문가들이 분석했다.
▽한때 10만 명 주둔 병력, 5000∼7000명으로 감축=대만 언론에 따르면 냉전이 최고조에 이른 1950년대 말 한때 10만 명을 넘었던 진먼 섬 병력은 올해 11월경 5000∼7000명으로 줄어든다.
‘진먼 섬 방위사령부(金防部) 포병지휘부(砲指部)’도 편제상 바로 한 등급 아래인 ‘진먼 섬 방위사령부 포병군(砲兵群)’으로 격하된다. 또 진먼 섬 동부의 119여단과 서부의 127여단 병력은 각각 동부 및 서부의 수비대 수준으로 줄어든다. 부대 지휘관도 소장(한국군의 준장)에서 상교(上校·대령)로 직급이 내려간다.
그러나 중국 대륙의 대만 침공을 막기 위한 기지로서 진먼 섬의 전략적 가치는 여전히 크다. 대만은 앞으로도 ‘슝펑 2E’ 등 최신의 장거리미사일과 1600여 문의 장거리포를 진먼 섬과 마쭈(馬祖) 등 주변 섬에 대량 배치해 대륙을 위협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진먼 섬에 배치한 장거리미사일을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 홍콩, 광저우(廣州) 등 대도시에 쏘아 막대한 인적 물적 타격을 입힌다는 것.
대만은 또 진먼 섬의 병력을 감축하더라도 수비부대와 포병부대, 장갑차부대, 상륙특전대, 미사일부대를 보강해 오히려 전력을 현재의 1.5배 수준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대륙으로 진공하지는 않더라도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침공하기 위해 진먼 섬에 상륙하는 것은 막겠다는 전략이다.
▽진먼 섬, ‘군수경제’서 ‘관광경제’로=최근 10년 사이 진먼 섬의 병력이 계속 줄면서 7만8000여 주민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 됐다.
대만 정부는 진먼 섬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2001년 진먼 섬과 대륙의 직접 왕래를 허용한 데 이어 올해 4월 1일엔 진먼 섬 후방의 펑후(澎湖) 섬에 대한 상호 왕래도 허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진먼 섬을 찾은 대륙인은 62만 명을 넘어 올해엔 7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진먼 섬 인구의 10배 가까운 대륙의 관광객이 섬을 찾으면서 과거의 ‘군수경제’가 ‘관광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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