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칼럼]日외교, 어깨 힘 빼라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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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매력은 겸허함에 있다’는 영국 외교관의 말을 들은 게 언제였던가.

일본의 외교 또한 예전엔 겸허했을지 모른다. 전후 일본 외교는 ‘수동적이다’라는 야유를 받으면서도 타자(他者)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설교하지 않으며 신중하고 진지하게 행동하려 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최근 달라지는 것 같다.

인권외교 앞서 신뢰부터 쌓아야

‘아시아태평양의 민주주의 국가 연합’이라 할 ‘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외교장관 회합’ 구상도 그렇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 구상을 내놓았으나 동석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반응은 차가웠다. 쓸데없이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 국방부처럼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지지파의 한 사람은 “인도가 제창한다면 모르겠지만 일본이 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일본의 외교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자민당 내에는 ‘가치관 외교를 추진하는 의원 모임’도 탄생했다. 이들은 ‘자유, 민주, 인권, 법의 지배’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나라나 국민에게 ‘일본이 그 이념 실현을 위한 주체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치관 외교라고 정의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가치 목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에 어떻게 ‘가치관 외교’를 적용할까. 최근 방일한 미 유력 싱크탱크의 외교전문가는 “네오콘의 소꿉놀이 같은 걸 일본이 왜 갑자기 끄집어내는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국이 이라크의 진흙탕에서 헤매고 국제정치에서 미국의 일극지배가 흔들림에 따라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한 장의 카드만 흔드는 외교는 예전보다 위험하다. 많은 경우에 지역 분쟁에서 미국의 군사력은 답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미국에 보조를 맞추고자 하면 동맹 유지의 리스크가 높아진다.

북한 문제에서도 미국은 (일본도 그렇지만) 확실한 해답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역시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때 아베 총리가 ‘납치문제 해결을 테러지원 국가 지정 해제의 전제조건으로 해 달라’고 요청하자 라이스 장관은 “미 국민이 직접 피해를 본 게 아니므로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뒤 아베 총리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전화회담에서는 납치문제에서 미일 간 보조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했다지만 ‘라이스 쇼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라이스 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총리의 발언에 불신감을 갖게 된 점이 여기에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미일동맹은 20세기가 남긴 일본의 최대 외교자산이며 21세기에도 일본 외교의 기반이 될 것이다. 다만 동맹이라는 전략적 이익을 어디서 어떻게 공유하는지를 서로 늘 점검하고 확인할 때만 이어질 수 있다.

지금 그 전략적 이익이 바로 동아시아의 ‘지역안정력’ 형성이 아닐까. 미국도 세계 전역에 동시에 안정력을 공급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에서 지역 내 대국이 제각기 이뤄 내는 지역안정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북한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중국에 6자회담 개최를 요구한 것도 그 전형적인 예다.

韓中자극하는 언동 자제할 때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그런 역할을 해 주기를 미국은 내심 바랄 것이다. 일본도 그 같은 역할을 할 정도의 ‘기개’를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 한국과 깊은 신뢰 관계를 쌓아 오지 못했다. 한중 양국은 미일동맹을 지역안정력이라고는 여겨도 일본을 그런 역할을 할 존재로 보지는 않는다. 어깨에 힘을 준 ‘가치관 외교’는 이웃 나라와의 신뢰 구축에도, 일본의 지역안정력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이 어엿한 지역안정력으로 기능하려면 미일동맹을 확실히 유지하면서도 미국으로부터 자립하고 독선적인 주관이나 언동을 자제해 이웃 나라에서 ‘일본 그 자체’로서 신뢰받을 수 있어야 한다.

후나바시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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