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생각나무]‘시간의 몽상가’ 헤르만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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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화요일입니다.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오늘이 5월 29일이고, 달력에 5월 29일은 화요일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신문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학교에서도 화요일 시간표에 맞추어 공부할 테니까요.

그래도 한번 물어볼게요. 오늘이 진짜 화요일이 맞나요? 오늘이 화요일이라는 걸 직접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토마토를 보면 바나나가 아니라 토마토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토마토는 상추하고도 전혀 다르게 생겼지요. 그렇지만 화요일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없습니다. 월요일이나 수요일도 마찬가지지요.

그렇다면 요일들은 어떻게 구별하는 걸까요? 다시 말해 오늘이 월요일도 수요일도 아닌 화요일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요?

그러고 보면 2007년도 5월도 그리고 29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가 2007년이고, 지금이 5월이고, 오늘이 29일이라는 걸 무슨 수로 알 수 있나요? 시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달력이나 신문이나 학교 시간표도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공처럼 둥글지 않고 접시처럼 납작하다고 믿었습니다. 모두들 거짓을 진실로 믿었고, 오랫동안 그 거짓은 바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날짜를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에 1세기, 아니 10세기 전에, 예를 들어 827년 전에 사람들이 조그만 실수로 날짜를 잘못 헤아렸을지도 몰라. 순전히 착각으로 금요일을 뛰어넘었을지도 몰라. 세상이 만들어지고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 중에 하루쯤 이런 실수를 했다는 건 크게 놀랄 일은 아니야.”

이것은 ‘헤르만의 비밀 여행’*이라는 책의 주인공 헤르만이 품었던 의심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척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의심이지요. 그러나 주근깨 가득한 아홉 살짜리 헤르만은 나름대로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런 의심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사실 헤르만의 의심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나 역사학자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형체가 없는 거라서 아무 흔적이나 자취를 남기지 않으니까요. 날짜를 다시 헤아려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답니다. 지나간 시간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헤르만이 어쩌다가 그런 의심을 품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이야기 속에서 헤르만이 맞이한 요일은 실은 월요일이랍니다. 알다시피 월요일은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지요. 그렇지만 헤르만은 여러분과 같이 학교에서 구구단 외는 것보다는 따뜻한 침대에서 뒹구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랍니다.

그래서 헤르만은 등굣길 내내 어떡하면 학교에 가지 않을까 궁리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거리에 소방차가 지나가면 학교에 큰 불이 난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하는 식이지요. 그러다가 오늘이 실은 일요일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까지 이르게 된 거랍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헤르만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술주정뱅이 노숙자를 만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타임머신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 허풍을 칩니다.

헤르만은 그만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가지요. 헤르만은 주머니에 있던 6마르크를 몽땅 털리고 학교에 가지도 못한 채 결국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헤르만의 비밀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어떻습니까. 헤르만의 비밀 여행이 단지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을까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시간에 대해 요모조모 따져 본 것은 그 어떤 학교 공부보다 소중한 공부였으니까요.

세상 모든 사람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한번쯤 의심해 보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지요. 훌륭한 철학자나 과학자 치고 ‘모든 사람이 틀렸다’고 의심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답니다. 새로운 생각, 훌륭한 생각은 바로 진리를 의심하는 데서부터 싹틉니다.

* 미하엘 엔데 <헤르만의 비밀 여행> 2002 소년한길

김우철 한우리 독서논술 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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