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인문학도들, 디지털 세상에 상상력 ‘접속’

  • 입력 2007년 5월 2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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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정통 아날로그 학문’을 공부한 인문학도의 활약이 커지고 있다.

컴퓨터공학과나 전산학과 출신들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에까지 상당수 인문계 전공자들이 진출하는 추세다. IT산업 경쟁이 ‘기술’ 차원을 넘어 ‘문화’ 차원으로 확대된 것도 이런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IT업계에서 활약하는 인문학도들

‘한글과컴퓨터’의 자회사인 ‘한컴씽크프리’의 강태진(48) 사장은 대학생이던 1983년 한글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인지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인 인지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뇌의 구조와 닮은 컴퓨터에도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부산대 영문학과 출신인 티맥스소프트 이강만(45) 상무도 대표적인 ‘IT 인문학도’로 꼽힌다. 이 상무는 “상상력의 산업이기도 한 IT 분야에서 인문학적 소양은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시장의 요구와 고객의 감성을 읽어 내야 하는 사업전략이나 마케팅 영역에서도 인문학도가 유리하다는 것.

LG CNS 솔루션사업본부의 최정윤(39) 차장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IT의 기술적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공학도 출신과는 다른) 신선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인문학에 문 활짝 여는 IT

한글과컴퓨터는 오피스와 리눅스 등을 개발하는 104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 12.5%인 13명이 인문계 출신이다. 안철수연구소도 222명의 연구원 가운데 10명이 인문학을 전공했다. LG CNS는 요즘 엔지니어를 뽑을 때도 전공을 묻지 않는다. 이 회사의 기술인력 5500여 명 중 23.5%가 인문계 출신인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 게임 업체인 엔씨소프트의 이재성 대외협력담당 이사는 “새로운 게임을 기획하는 것은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 능력이 좋은 인문학도가 게임업체에서도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과컴퓨터의 장윤석 인력개발실장은 “입사 초기에는 공대 출신보다 IT에 대한 이해력이 낮았던 인문계 출신들이 컴퓨터에 대한 열정과 인문학적 창의력으로 핵심 엔지니어로 성장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도 “인문학의 위기는 연구비 지원 등으로 해결되지 않고 IT 산업과의 융합 교육 같은 새로운 길을 열어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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