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주말, 자연속으로 점프!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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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전셋집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세 부부(위 사진)와 캠핑장에서 생일파티를 연 김현규 씨 가족. 양평·춘천=원대연 기자
주말마다 전셋집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세 부부(위 사진)와 캠핑장에서 생일파티를 연 김현규 씨 가족. 양평·춘천=원대연 기자
권기업(오른쪽에서 첫번째) 김경옥(오른쪽에서 두번째) 씨 부부는 생후 5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도 캠핑을 다닌다. 캠핑은 빡빡한 도시 생활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이라고 했다. 나무 그늘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는 날도 많다. 춘천=원대연 기자
권기업(오른쪽에서 첫번째) 김경옥(오른쪽에서 두번째) 씨 부부는 생후 5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도 캠핑을 다닌다. 캠핑은 빡빡한 도시 생활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이라고 했다. 나무 그늘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는 날도 많다. 춘천=원대연 기자
경기 양평군에서 3년째 주말 전원생활을 하는 세 부부. 토요일인 19일 오후 뒷산으로 취나물을 뜯으러 가는 길이다. 지인들이 찾아오면 6명이 모두 기타를 메고 연주를 한다. 양평=허진석 기자
경기 양평군에서 3년째 주말 전원생활을 하는 세 부부. 토요일인 19일 오후 뒷산으로 취나물을 뜯으러 가는 길이다. 지인들이 찾아오면 6명이 모두 기타를 메고 연주를 한다. 양평=허진석 기자
《토요일인 12일. 간밤에 비를 뿌린 구름은 가벼워보였다.

하늘로 쭉 뻗은 푸른 녹음을 배경 삼아 새 한 마리가 조용히 사선을 그렸다.

심호흡 한 번에 풀냄새와 흙냄새, 호수를 스친 신선한 공기가 가슴 깊이

쑤욱 밀려들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다 삼킨 춘천 고슴도치 섬의 아침.

들리는 것은 맑은 새소리뿐이다. 그 소리가 아침을 알렸다.

축구장 예닐곱 개를 합쳐 놓은 듯한 푸른 잔디밭에는 밤 사이 알록달록한

촌락 하나가 생겼다. 전날 밤 전국에서 달려온 캠핑족들이 만든 텐트촌이다.

보이스카우트 시절의 야영이 전부인 사람에게는 번잡하기만 한

‘주말 캠핑’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야영은 절대로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캠핑 대신 주말마다 시골집을 찾는 사람도 있다.

아예 시골에 전셋집을 따로 얻어두고 그곳에서 주말의 여유를 즐긴다.

주말 캠핑과 주말 시골생활. 자연을 동경하는 도시인들의 소박한 몸짓이다.

그들은 무엇을 느끼고 꿈꾸며 매주 도시를 탈출할까.》

○텐트 안의 생일상, 그 즐거움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생일 축하∼합니다.”

어른 무릎 높이의 낮은 식탁에는 오색 떡 케이크와 갖가지 나물 반찬이 놓여 있었다. 텐트 속에 차려진 그 식탁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할아버지의 칠순 생신을 축하했다.

김현규(42) 씨 가족은 금요일 밤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천안에 사는 김 씨는 서울을 거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으로 왔다. 여섯 살과 다섯 살의 두 아들, 아내 주영아(37) 씨도 함께했다.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야영을 즐깁니다. 자연 속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느긋하고 푸근해져 절로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그 맛이죠.” 김 씨의 말이다.

이번처럼 시간과 장소가 적당하면 부모님과 함께 자연을 찾는다. 야영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요즘은 ‘거실형 텐트’로 불리는 대형 텐트에서 야전 침대를 놓고 잠을 잘 수 있다.

금요일 저녁에 야영장에 도착해 토요일과 일요일을 온전히 그곳에서 보낸다. 바쁜 일상과는 전혀 다른 느긋함이 가득한 시간이다.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김 씨는 1970∼80년대 팝송을 들으며 한주일간 쌓인 피로를 푼다. 두 나무 사이에 걸쳐 만든 그물침대에 누워 냇 킹 콜의 ‘투 영(too young)’을 듣다 보면 학창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역시 주말마다 자연을 찾는 임학동(39) 씨는 야영장으로 향하는 동안 ‘껍질을 벗는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고 말한다. 1년 반 동안 야영장을 순례하며 전국 여행을 하다시피 했다. “바로 이런 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경기 양평의 한 농가 주택에는 주말마다 세 쌍의 부부가 모인다. 박철양(46) 김혜경(44) 씨 부부, 박종민(53) 박경옥(49) 씨 부부, 박강호(52) 박경숙(52) 씨 부부다. 박철양 씨와 그의 두 누나 부부는 시골 생활을 즐기기 위해 전셋집을 얻었다. 3년째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5개월 된 딸 데리고 주말마다 캠핑장으로

“그거 아세요? 텐트 안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의 느낌이 계절마다 다르다는 거요. 저는 야영생활을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남편 권기업(38) 씨와 5개월 된 딸을 데리고 거의 매주 캠핑을 다니는 김경옥(34) 씨의 자랑이다. 자연의 섬세한 변화를 통해 느끼는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만족감을 살짝 드러냈다. 이들 부부는 딸이 생후 100일도 되지 않았을 때 한겨울 캠핑을 감행한 마니아들이다.

자연과 교감하는 감동은 주말 전원생활을 하는 박종민 씨도 간직하고 있다.

“시골의 아침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아세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은 햇살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감동의 순간은 탄생합니다.” 고등학교 교사인 그는 정서적으로 충만한 생활을 원해 자연을 택했다. 작년 9월 전북 장수군 방화동 오토캠핑장에서 체험한 추억은 김현규 씨의 꿈에 지금도 가끔 나온다.

“보슬비가 내리는 조용한 밤에 네 쌍의 부부가 함께 흘러간 노래를 오랜 시간 즐겼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 마음이 되더군요. 같이 춤도 췄습니다. 그때 문득 ‘이게 사는 맛이구나. 세상의 어느 것도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고이더군요.” 김 씨는 그날 밤 세상을 살아가는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자연 속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사실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주말 전원생활을 하는 박경옥 씨는 “서울에서는 항상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지만 양평에 오면 갑자기 시간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여유 있는 마음은 자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야영장과 주말 전원주택에서 나누는 대화는 도심 속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자연스럽게 문화와 책, 교육, 노래 등에 대해 얘기하게 됩니다. 주식, 아파트, 경제 전망 같은 것들은 절대 화제에 오르지 않지요.”(박철양 씨)

주말 전원생활을 하는 세 부부는 매주 만나는 사이지만 매번 밤늦게까지 대화의 꽃을 활짝 피운다. 삶의 여백에서 새로 발견한 시간은 마음껏 웃고 떠드는 시간이다.

○야영장에선 처음 만난 사람도 금세 친구로

야영장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누구나 쉽게 인사를 한다. 이웃에게조차 인사를 잘 하지 않는 아파트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도시에서는 경쟁과 효율의 강박관념이 사람을 지배하지만 자연에서는 배려와 행복감이 감돕니다. 아마 그것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캠핑카를 몰고 나온 이종화(60) 씨의 해석이다.

금요일 밤 야영장 곳곳에서 밝은 화롯불이 피어올랐다. 화롯불은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 세 집의 화롯불이 일렬로 합쳐졌고 그 주위로 10여 명이 모여 앉았다. 야영장에서는 모두 자연인이다. 판사나 사장, 교사, 공무원 등의 사회적 직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치 목욕탕에서 만난 것처럼 오직 사람 대 사람으로만 만난다.

인상 좋은 전병욱(37) 씨가 화롯불 가에 앉아 자신이 캠핑 생활 초기에 맛본 작은 감동을 소개했다.

“오토캠핑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려고 야영장을 찾았는데, 처음 보는 저희 부부에게 스스럼없이 음식을 권하고 이런저런 것을 챙겨 주는 따뜻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뒤로는 제가 캠핑 전도사가 됐죠. 하하.” 캠핑을 하는 사람들의 심성에 동화되고 싶은 마음에 주말 야영 생활에 돌입했다고 전 씨는 털어놓았다.

야영장은 거대한 사교장이다. 한 곳에서는 부침개를 내놓았고, 다른 곳에서는 쌍화차로 손님을 맞았다. 자신이 겪은 재미있는 얘기,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얘기가 넘쳐났다.

‘열린 마음’을 가진 캠퍼들의 행동은 올해 칠순인 이정자 씨를 캠핑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이 씨의 캠핑 경력은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는 유리가게를 운영했던 남편의 1.5t 트럭에 캠핑용품을 싣고 다닌다. 이 부부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으로 캠핑 여행까지 다녀왔다.

이날 야영의 공식 명칭은 ‘부엉이 패밀리 전국 오토캠핑 대회’.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오토캠핑’이란 회사가 마련한 자리다. 2002년 첫 행사 때는 참여 인원이 30명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선착순으로 200명만 뽑을 정도로 저변이 넓어졌다. 함께 약속을 하고 같은 곳으로 캠핑을 떠나는 작은 행사는 매주 열린다.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열린 마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말 전원생활을 하는 세 부부도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실 시누이나 처남댁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개성을 존중해 주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먼저 전원생활을 제안한 박종민 씨의 설명이다.

○자연 속의 아이들, 그리고 가족

생일 파티가 열린 김현규 씨 텐트에는 오지연(14) 양과 오준상(11) 군이 앉아 있었다. 하도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를 해서 처음엔 가족인 줄 알았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부모가 아직 텐트를 치고 있어 이웃집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여기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다가 식사 때가 되면 그 집에서 자연스럽게 밥을 먹곤 해요.” 아이들 반찬을 챙겨 주던 주경아 씨의 말이다.

부모의 교육철학도 자연을 닮았다. 준상이는 월요일에 시험이 있는데도 야영장에 왔다.

“야영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은 지식을 많이 전달하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지식을 담는 그릇이 커야 한다고 믿습니다.” (김 씨)

지연이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얘기를 듣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재미에 빠진 눈치다.

김 씨의 두 아들은 야영장에 오면 표정이 밝아지고 몸짓이 커진다. 유치원 선생님은 부모에게 “자기 감정변화를 잘 표현하고 주눅 드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매주 자연에서 뛰어놀고 낯선 형 누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기 때문에 형성된 인성이라고 믿는다.

오토캠핑을 하면 아이들도 야영 생활이 그리 불편하지 않다. 주방과 식탁이 있고 전기를 끌어다 난방을 하기도 한다.

구미에서는 캠핑카에서 보내는 야영을 오토캠핑이라 부르지만 국내에서는 식탁과 의자, 천막, 거실형 텐트 등의 편의 장비를 싣고 다니면서 좀 더 편리한 야영생활을 하는 것을 함께 일컫는다.

토요일 아침의 비도 이들에게는 불편이 아니라 오히려 운치를 더하는 자연의 축복이었다. 텐트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감성을 자극했다. 자연이 뿌린 세례를 그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 세례로 묵은 스트레스를 씻어냈는지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주말 전원생활을 하는 세 부부는 아예 양평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다. 세 가족이 공동 거실을 두고 함께 살기로 했다.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낯선 사람들과 삶의 즐거움도 나눌 것이다.

“자연 속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잖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제대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 짐을 싸서 그냥 집을 나오니까 다 좋아지더라고.” 예순 일곱의 나이에 야영 생활을 시작한 이정자 씨의 캠핑 예찬론이다.

주말캠핑과 용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오토캠핑(www.autocamping.co.kr)’과 ‘호상사(www.hocorp.co.kr)’.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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