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따라 세계일주]<3>상파울루 문화축제 ‘Virada Cultural’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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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4시간’ 동안 열리는 브라질 상파울루 문화예술축제 중 인기 프로그램인 공원의 피아노 연주회. 밤에 찾은 공원 연주회에는 낭만이 가득했고, 낮에는 삶의 여유가 넘쳐 났다. 사진 제공 유경숙 씨
꼭 ‘24시간’ 동안 열리는 브라질 상파울루 문화예술축제 중 인기 프로그램인 공원의 피아노 연주회. 밤에 찾은 공원 연주회에는 낭만이 가득했고, 낮에는 삶의 여유가 넘쳐 났다. 사진 제공 유경숙 씨
어설펐지만 사람 냄새가 풀풀 풍겨났던 야외 텐트 공연. 피에로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무대로 불려 나가 춤을 춰야 했다. 사진 제공 유경숙 씨
어설펐지만 사람 냄새가 풀풀 풍겨났던 야외 텐트 공연. 피에로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무대로 불려 나가 춤을 춰야 했다. 사진 제공 유경숙 씨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축제가 열린다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왔다.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파울루 문화축제’의 공식 명칭은 비라다 쿨투랄(Virada Cultural)인데 ‘문화를 뒤집는다’ ‘문화를 돌린다’는 뜻이다. 계절이 뒤바뀌는 시기에 열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브라질 하면 리우 카니발을 떠올리기 쉽지만 올해 3회를 맞는 이 축제는 공연예술축제로는 브라질 최대 규모의 행사다. 매년 5월 전후에 딱 하루(24시간) 열린다. 24시간! 그래서 더 짜릿하다. 젊은 동양 여자가 축제를 보러 온 게 특이해 보였는지 브라질 방송 기자가 다가왔다. 그에게 “왜 24시간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질질 끌기보다 이런 멋진 하룻밤이 우린 좋은데 너는 싫어?” 하고 되물었다.

어쨌거나 이런 화끈한 콘셉트 덕분에 이 축제를 보러 오는 외국인 관광객만 25만 명에 이르고 300만 명이 이 축제를 즐긴다고 하니 이제 겨우 세 살짜리 공연 축제치고는 획기적이다.

○ “짧고 화끈하게” 뮤지컬 연극 서커스 댄스 등 350여 개 작품 24시간 공연

이 축제를 브라질 정부와 상파울루 시가 남미 최대 문화축제로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달력에 축제가 열리는 날이 표시돼 있을 정도다.

올해는 5월 5일 오후 6시에 시작해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열렸다. 상파울루의 주요 공연장 및 광장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교육센터 등 85곳에서 뮤지컬 연극 서커스 마임 영화 댄스 문학 록 등 다양한 공연이 350여 가지나 올려졌다.

좀 더 많이 보려고 오후 6시부터 골목골목을 기웃거렸지만 이곳 사람들은 밤늦게 노는 게 익숙해서 8시가 넘어서야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메인 공연도 밤 12시에 시작됐다. 브라질 ‘국민 가수’들의 공연을 보고 싶어 11시쯤 갔더니 줄은 이미 공연장을 한 바퀴 돌아 입구에서도 몇 번씩 휘어 있었다.

메인 공연은 포기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볼레바르드 상주앙 공원에서 열리는 24시간 피아노 콘서트를 보러 갔다. 떠들썩한 축제 중에서도 이 공연은 조용함을 원하는 클래식 마니아들의 명소다. 하양 빨강 파랑의 천을 나무 가지 사이에 묶어 만든 ‘야외무대’에 놓인 한 대의 피아노. 행인들이 한 평 남짓한 피아노 옆 어디라도 그냥 앉으면 그대로 객석이 됐다. 인근 카페테리아에서 좋은 자리를 잡아 와인을 주문하고 피아니스트가 선사하는 선율에 눈을 감고 있을 때는 더 부러울 게 없었다. 연주자는 1,2시간 간격으로 바뀌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24시간 축제 기간 중 아무 때나 이곳에 오면 피아노 연주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 300만 관객-아마추어 예술가들 함께 어울려 밤새워 거리의 축제… 축제

잠시 쉬다가 다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알록달록한 천막에 사람이 모여 있었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심야에 축제를 기웃거리는 동양 여자를 보고 사람들은 무대 가까이 앞쪽으로 길을 내 줬다. 우리로 치면 옛날 유랑극단 분위기가 풀풀 나는 허름한 이동식 무대와 간이 조명 속에서 피에로와 어설픈 무희가 등장해 춤으로 흥을 돋웠다. 빠른 음악이 분위기를 고조시키자 객석은 순식간에 스탠딩 나이트처럼 변해 다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취해 열심히 몸을 흔드는 동양 여자가 특이했는지 사회를 보던 피에로가 갑자기 내 손을 무대로 이끌었다. 얼떨결에 올라간 내가 팔만 흔들어도 관객들은 박수를 쳐줬고 나도 최선을 다해(?) 춤을 췄다. 피에로보다 박수를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흥에 겨워 떠날 줄 모르는 관객들을 위해 공연 관계자는 빨강 노랑의 촌스러운 조명과 음악을 함께 틀어줬다. 시골 나이트 같은 분위기에 웃음도 나왔지만, 모르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웃고 춤추다 보니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이 아닐까 싶었다.

공연 수준은 들쑥날쑥이었다. 특히 무료 거리 공연 중에는 어설픈 게 많았다. 일년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이날을 기다렸던 가난한 예술가부터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창한 예술을 감상한다기보다 24시간 신나게 즐긴다는 생각에 열기가 뜨거웠다. 결국 축제는 사람이 만드는 거다.

마스피 광장에서 만난 한 히피 할머니는 문신으로 가득한 몸을 보여주며 자유로움을 한껏 구가하고 있었다. “보디 문신이 멋지다”고 하자 “너도 해 봐.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대답하며 환히 웃었다. 노년이 돼서 그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세상의 공연장에서 웃고 있는 모든 이들을 더 빨리 만나고 싶어졌다.

독자 여러분! 정보 하나 드릴까. 내년에는 4월 26일에 또 달린다. 밤새!

유경숙 공연기획자 pmiki1220@hotmailcom

▼가 볼 만한 상파울루 문화의 거리

남미는 뮤지컬보다 연극이 더 보편화된 편이다. 이곳 저곳 흩어져 있는 소극장에서 크고 작은 공연이 많이 열린다. 소극장 연극은 어느 곳이든 어렵지만, 손으로 그린 듯한 포스터들이 거리의 초라한 게시판에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저예산이 아니라 무예산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연극에 대한 관심은 높은 듯했다. 곳곳에서 연극 포스터가 눈에 띄었고 9일 동안 머물며 본 신문의 문화 섹션에도 연극 관련 기사가 많았다. 하지만 상파울루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바람에 휩쓸리고 있었다. ‘프로듀서스’ ‘마이 페어 레이디’ 등 미국 뮤지컬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오페라의 유령’도 2005년부터 상파울루 에이브릴 극장에서 8개월간 성황리에 ‘장기 공연’했다고 한다. 여행객이 가 볼 만한 상파울루 문화 거리를 소개한다.

▽ 마시피 광장

뉴욕에 소호가 있다면 상파울루에는 마시피가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상파울루 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인근 공터는 토요일마다 수공예품 판매 매장을 비롯해 거리 퍼포먼스가 넘쳐 난다.

▽ 헤포블리카 광장

일요일 오전에는 신진화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오후에는 크고 작은 거리 공연들이 열린다. 오전에는 대규모 벼룩시장도 열리므로 일요일 종일 이 광장을 중심으로 시내 투어를 하는 게 좋다.

▽ 벨라비스타 거리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아마추어 밴드들이 재즈 바나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데 브라질 젊은이들의 트렌드와 패션을 엿볼 수 있다. 오후 6시가 넘어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므로 8시 이후에 가면 좋다. 심야 외출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현지 가이드를 구해서 함께 다니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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