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옥상, 궁핍한 삶의 공간?…참살이-럭셔리 공간으로 재탄생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코멘트
잔디와 나무, 세련된 인테리어로 유명한 현대백화점 천호점의 옥상공원. 벽면에 통유리를 설치해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제공 서울영상위원회
잔디와 나무, 세련된 인테리어로 유명한 현대백화점 천호점의 옥상공원. 벽면에 통유리를 설치해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제공 서울영상위원회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들어선 신세계백화점의 트리니티 가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들어선 신세계백화점의 트리니티 가든.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의 초록뜰. 사진 제공 서울영상위원회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의 초록뜰. 사진 제공 서울영상위원회
사옥 옥상에서 댄스를 배우는 삼성출판사 직원들. 사진 제공 B&A INC
사옥 옥상에서 댄스를 배우는 삼성출판사 직원들. 사진 제공 B&A INC
《‘결혼은 미친 짓이다’ ‘옥탑방 고양이’

‘말죽거리 잔혹사’ ‘방과 후 옥상’….

이 영화들은 장르와 색깔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옥상이다.

건물의 꼭대기인 옥상. 그곳은 묘한 공간이다.

주변 눈치 안 보고 빨랫줄에 걸어 놓은

알록달록한 속옷과 노랗거나 파란 닮은 꼴의 물탱크,

학창 시절 씁쓸한 싸움의 추억까지.》

궁핍의 이미지가 강했던 옥상은 2003년 드라마 ‘옥탑방…’의 인기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가난과 사랑, 꿈이 공존하는 낭만의 색깔이 칠해졌다.

영화나 드라마는 옥상의 가난한 과거를 짝사랑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옥상은 이제 전망만 좋고 ‘배고픈’ 공간이 아니다.

옥상의 얼굴은 나무와 풀로 산뜻하게 단장한 녹색이 됐다. 때로는 유명 작가의 조각품과 분수, 세련된 인테리어로 치장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참 공간 디자인연구소’ 이명희 대표는 “과거 옥상은 버려진 공간이었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과 만나는 통로가 됐다”며 “도시의 고층빌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옥상은 일종의 탈출구”라고 말했다. (도움말: 서울영상위원회)

○ 옥상에 무슨 일이?

서울 강동구 천호동 현대백화점 천호점의 옥상공원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0여 평의 공간에 들어선 잔디와 나무, 은은한 조명과 나무 바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탁월한 전망이 자랑거리다. 올림픽대교-풍납토성-천호대교-아차산-워커힐호텔-강변북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을 살리기 위해 옥상공원 한쪽 벽면 15m를 통유리로 꾸몄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해가 질 무렵 시작된다. 올림픽대교의 조명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 한강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

설계와 조경, 시공을 담당한 현대백화점 관리본부 이민규 차장은 “귀족 공원의 분위기로 꾸몄다”며 “마음껏 잔디를 밟을 수 있는 친환경성과 빼어난 전망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고 자평했다.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의 옥상공원도 날씨가 더워지면서 찾는 사람이 늘었다.

올해 2월 문을 연 본관의 조각공원 트리니티 가든에는 헨리 무어의 ‘와상’,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등 모더니즘 거장들의 대표작이 들어서 있다. 200여 평의 공간에 물이 흐르는 수로 사이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신관 11층에는 도심에서 자연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400여 평 규모의 스카이 파크가 있다. 나무 사이로 작은 오솔길과 연못을 만들어 도심 속에서 작은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 된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아이파크몰 옥상은 가족 레저 및 휴식공간이다. 18홀 골프 코스의 퍼팅 홀만을 축소한 ‘펏펏 골프’와 농구를 즐길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옥상의 색깔이 바뀌면서 전통적인 형태의 옥탑방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점. 서울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 코디네이터인 이근철 씨에 따르면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위해 옥탑방을 구해 달라는 의뢰는 많지만 발품을 팔아도 마땅한 공간이 없다고 한다.

○ 옥상이 경쟁력이다

옥상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이제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웹 디자인업체인 ‘인터랙티브디자인 ID369’의 조영주 대표는 소문난 ‘옥상족(族)’이다. 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옥상이 있는 건물에 입주한다. 조 대표는 “잘 꾸며진 옥상은 사원들의 휴식과 비즈니스 공간으로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다”며 “저녁 시간 옥상에서 여러 차례 파티를 열어 큰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출판사도 옥상공원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약 200평의 옥상에 나무 바닥과 통유리로 열린 공간을 만들어 주변 전경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바비큐 파티와 영화 상영 이벤트, 꼭짓점 댄스 배우기 등 사내외 모임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법대 신관은 대학가의 대표적인 옥상공원. 5층으로 높은 위치는 아니지만 언덕에 있어 전망이 좋다. 원래 콘크리트 바닥이었지만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전원 공원으로 꾸몄다.

잔디를 깔고 산책로를 만들고 주위에 산철쭉, 배롱나무, 옥매화 등을 심었다. 원두막과 벤치도 있어 학생들의 훌륭한 쉼터가 됐다.

트렌드컨설팅 업체인 아이에프네트워크의 김해련 대표는 “뉴욕에서는 건물이 높을수록 고급스러운 공간이 된다”며 “도심 속 전원 분위기를 원하는 도시인들의 희망과 맞물려 옥상의 변신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도심 속 옥상공원 명소

도심의 빌딩 숲에는 숨어 있는 옥상 명소가 의외로 많다.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옥상에는 전원 공간인 ‘초록 뜰’이 있다. 40여 종의 식물이 심어져 계절별로 다채로운 꽃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인근 고층 빌딩과 덕수궁이 한눈에 보여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장소다.

명동의 유네스코빌딩 옥상도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곳에는 200여 종의 식물과 연못, 텃밭까지 갖춘 ‘작은 누리’가 있다. 인파로 붐비는 명동에서 전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여겨진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 옥상에도 휴식 공간이 있다. 안전 문제로 난간이 설치된 점이 아쉽지만 ‘라이브 캠’을 통해 청계천, 남산, 명동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