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만 늘린 복지…” 총체적 불만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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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안상훈 교수팀이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지속 가능한 한국형 복지국가의 비전과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은 일자리, 주거, 빈곤 등 분야에 관계없이 현 정부의 복지정책에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 정부 출범 후 매년 복지 분야 예산을 20%씩 늘려 왔다고 밝혔지만 국민의 ‘체감(體感) 복지 수준’을 끌어 올리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또 이번 조사 결과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 국민이 계층 간 소득 격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평등주의적 인식이 확산되면 공동체의 중장기적 발전과 번영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경제 성장에 수반되는 상하위 계층의 ‘절대적 소득 격차’를 줄이려는 정책이 성장을 떨어뜨려 절대 빈곤층이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 현 정부 복지 정책 만족도 낮아

이번 조사에서 정부의 복지정책 중 만족도가 가장 낮은 분야는 역시 일자리와 관련된 분야였다.

정부의 실업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잘못하는 편이다’ ‘매우 잘못하고 있다’ 등 부정적 응답이 77.2%나 됐다. 반면 ‘잘하는 편이다’와 ‘매우 잘하고 있다’ 등 긍정적 평가는 5.9%에 그쳤다.

이는 2005, 2006년 2년 연속 정부가 신규 일자리 창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고 올해 들어서도 계속 월평균 목표치인 30만 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빈곤정책 부문에서도 긍정적 평가는 8.6%에 그친 반면 69.5%는 부정적이었다.

현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정책 실패를 반영한 듯 주거정책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잘못하는 편이다’가 43.4%, ‘매우 잘못하고 있다’도 12.7%로 절반이 넘는 56.1%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긍정적 응답은 8.7%에 그쳤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산업 발전에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한국 국민이 다른 선진국 국민보다 정부 책임이 크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보건 부분의 정부 지출이 어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한국인은 정부의 지출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산업 발전보다는 복지 및 보육 예산 증가율이 높았던 현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와는 인식 차이가 적지 않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 선진국보다 강한 한국인의 ‘평등의식’

소득 격차에 대한 한국인의 강한 거부감도 눈에 띄었다.

‘현재 (자신이 사는 사회에) 큰 소득 격차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동의한다’를 1, ‘매우 반대한다’를 5로 본 조사에서 한국인은 1.51로, 8개 선진국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면 미국과 호주는 2.24로, 비교 대상 국가 중 소득 격차의 존재를 부정하는 경향이 가장 강했다.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에 대한 시각에서도 선진국과 차이가 있었다.

‘고소득층의 세금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한 질문(‘지나치게 높다’ 1, ‘지나치게 낮다’ 5)에서 한국인은 4.21로 8개 선진국(평균 3.33)에 비해 ‘고소득층의 세금이 낮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반면 ‘중산층이 내는 세금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은 2.52로 영국(2.73)과 스웨덴(2.53)에 이어 ‘낮다’는 쪽의 반응이 높았다. 하지만 선진국보다 한국의 고소득층이 세금을 덜 내고 중산층은 더 낸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통계는 찾기 어렵다.

한국인이 각종 경제, 사회 문제에서 정부에 의존하는 정도가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다는 점도 이번 조사에서 나타났다.

우선 ‘정부가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여야 하는가’를 물어 ‘매우 동의한다’를 1로, ‘매우 반대한다’를 5로 답하는 조사에서 한국인은 2.09로 비교 대상 8개 선진국의 응답에 비해 정부의 개입을 가장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3.08) 호주(2.74) 등은 소득 격차 해소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강했다.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에게 마련해 주는 것이 정부의 책임인가’를 묻는 조사(‘당연히 정부 책임이다’ 1, ‘당연히 정부 책임이 아니다’ 4)에서 한국인은 2.03으로, 노르웨이(1.76) 독일(2.02)을 뺀 6개 선진국보다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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