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내 안의 꽃만 아름다운가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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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까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 산자락에 이른바 전원주택을 짓고 살았다. 아파트 전세살이를 하다가 말 그대로 ‘전원’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을 몰아붙여 실행한 결과였다. 없는 돈에 집 짓느라 은행 빚이 불어났지만,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마당에 나가 아침 바람을 쐬며 하루를 맞이하는 삶은 행복했다.

마당에 잔디를 깔고 철쭉과 영산홍으로 도로와의 경계를 삼았다. 봄이면 뒷산을 수놓는 진달래 두어 그루를 슬쩍 캐다가 마당에 옮겨 심고는 나의 정원에서도 잘 자라 주기를 바라며 애정을 쏟았다. 자투리땅을 이용해 텃밭을 가꾸고, 마당에서 친구들과 작은 잔치를 벌이는 즐거움은 무엇보다 컸다.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 가며 그렇게 4년여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지냈다.

그러다 작년 초 뜻밖에 재직하던 대학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 단순하게 말하면, 기독교를 가르치는 교수가 불교에도 호의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10여 개월 그럭저럭 버텼는데 수입이 끊기자 가계 빚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늘었다. 집을 팔아 해결할 도리밖에 없었다. 다시 아파트 전세 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올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화단에도 철쭉과 영산홍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정원에서 보던 것만큼 신기하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도리어 내가 살던 곳에도 영산홍이 화려하게 피어났겠지, 가 보고 싶다, 그런 마음뿐이었다. 작년만 해도 철쭉과 영산홍을 자세히 비교하며 차이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아파트 화단에는 그 정도로 눈길이 가지 않았다. 왜 같은 꽃인데 느낌이 달랐을까.

내 땀과 정성이 담겼느냐 아니냐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것이냐 아니냐는 소유감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산에 있는 진달래보다 마당에 옮겨 심은 진달래에 더 눈길이 간 이유도 내 것이라는 소유욕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 것에는 애착이 가고 남의 것, 모두의 것에는 애착이 덜 간 탓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 무소유의 행복이라는 신비를 알려주신 인류의 스승께서 산에 핀 우리 모두의 꽃을 네 마당에 핀 너만의 꽃보다 더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는 것 같았다.

이찬수 목사·전 강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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