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制 모자라 모든 취재에 재갈”

  • 입력 2007년 5월 22일 02시 56분


코멘트
■시민-언론단체, 정부 기자실 통폐합 일제히 비판

정부가 37개 부처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기자의 사무실 출입을 금지하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확정한 데 대해 언론계와 학계에서는 “반(反)민주적인 취재 봉쇄 조치”라며 반발했다. 이념적 성향이 서로 다른 언론단체와 시민운동단체들도 이번만큼은 일제히 한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주는 대로 받아쓰라?=정부는 출범 직후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해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만 남겨뒀으나 이번 조치는 이마저도 통폐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기자의 권력에 대한 감시 활동과 취재를 통제한 뒤 ‘받아쓰기 저널리즘’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신문협회(회장 장대환)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변용식)는 21일 공동성명을 통해 “정부가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리고, 방만한 국정운영의 폐해는 숨겨 두겠다는 것을 선포하는 행위와 다름없다”며 “선진화 방안이라고 하지만 선진국 어디에도 이렇게 가혹한 취재 제한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지지해온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성명에서 “이번 통폐합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정부 정책 흔들기’와 ‘정당한 취재활동’마저 구분하지 못하고 언론의 모든 취재 활동을 제한하고 제약하겠다는 저급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정책실장은 “브리핑 제도는 대표적인 실패 정책인데 이번 통폐합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사생아적 정책”이라며 “일방적으로 취재 영역을 축소하는 것은 정부가 주는 대로 받아쓰게 하려는 세련된 언론탄압”이라고 말했다.

▽정보 공개부터 제대로 해야=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정종복 한나라당 의원이 해외 공관에서 국정홍보처에 제출한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정부 부처에 기자실이 없다’고 (국정홍보처가) 주장한 영국 뉴질랜드 등 의원내각제 국가의 경우에도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에 기자실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공무원의 개별 접근을 허용하고, 덴마크에서도 출입처에 등록된 기자는 사무실을 임의로 방문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앞으로 브리핑 제도가 다 아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보도자료를 읽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하려면 대화창구가 많아야 하는데 이번 조치는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단절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정일용 회장은 “기자실 제도가 없는 나라는 그만큼 정부의 정보 공개 시스템이 잘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취재시스템 변화에 기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공문을 19일 국정홍보처에 보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왜곡된 언론관=이번 조치는 노무현 대통령이 1월 국무회의에서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기사흐름을 주도한다.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가공하고 담합하는 구조가 있는지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한 뒤 국정홍보처가 내놓은 것이다. 이는 사실상 현 정부가 출범 직후 내놓은 취재시스템 개편안을 확대 강화한 것이다.

전국언론노조는 21일 ‘밀실행정 권장을 공정한 취재환경 조성으로 호도하지 말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특정 사안에 대해 이해와 경험이 많은 기자들의 의견을 다른 기자들이 존중하는 게 문제라면, 이는 대통령의 비뚤어진 시각일 뿐”이라며 “브리핑룸 및 기자실 통폐합은 대통령의 왜곡된 언론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